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비젼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
벧전3:5-7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벧전 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무런 목적 없이 또는 옳지 않은 줄 알면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시간과 물질을 쏟아 무리하게 추진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더더욱 목적 없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지으실 이가 없습니다.

만사가 다 나름대로 깊으신 뜻과 섭리가운데 창조하셨고 또한 지금까지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전 3:17)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뜻은 무엇이며, 우리 가정은 그 뜻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아담과 하와의 가정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게 되면 제일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증거나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하 만물을 지으신 것을 인간에게 값없이 주신 일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아담을 위해 지상낙원 에덴동산으로 만드시고 그리로 인도하신 것을 보면 더 잘알 수 있습니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이끌어 라는 말은 하나님이 친히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셨음을 뜻하며, 두사라는 말은 미완료로 잠시 구경이 아니라 머물러 살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다스리며 라는 말은 노동을 하고, 보살피고, 경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지키게 하라는 말은 울타리를 치고, 보존하고, 망을 보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아담이 범죄 하기 전이며, 먹을 것이 지천인 에덴동산에서도 왜 일을 하고, 도적이나 강도가 없는 곳을 왜 지켜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것은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보존하는 길이며, 에덴 동산은 죄가 없는 곳이지만 사단의 위협과 도전을 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최초로 세우신 가정은 단지 먹고 마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고상한 목적이 있으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혼자서 경작을 하고, 에덴동산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돕는 배필을 창조하여 짝지어 주신 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돕는 이라는 말속에 인간은 본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뜻하며, 배필이라는 말은 사과를 둘로 쪼갠 짝과 같은 말로 돕는 배필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짝지어 주신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부부간에 서로 성격차이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서로 갈등하며 부부 싸움하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일심동체요, 천생배필로 아주 뜻이 잘 맞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도 그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담과 하와는 현대 가정들처럼 가정 폭력은 물론 사사로운 말다툼조차 없는 사랑의 가정이었습니다. 부부가 얼마나 마음이 잘 맞든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데 의견이 일치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등한히 하고, 뱀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다스리라 하신 말씀대로 땅을 경작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들어온 뱀을 쫓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뱀의 말만 듣고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함께 먹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말은 사기였고, 그로 인해 모든 좋은 것을 다 잃어버리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1) 부부간의 사랑이 책임전가와 갈등으로,

2) 생산의 기쁨이 해산의 고통으로,

3) 남편과의 평등이 종속과 지배당하고,

4)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지상으로 추방을 당하고

5) 저주 받은 땅위에서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을 수 있고

6) 영생의 존재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로 전락되고

7)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불행한 조상이 된 것입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최초의 가정이 아담과 하와의 방심과 이기심으로 풍지 박산이 났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갈수록 죄와 고통이 심화되었고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 홍수 심판이요, 바벨탑의 심판입니다.




2.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람의 가정을 선택하신 일입니다.

아브람의 가정도 범죄 한 아담의 자손이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불신앙의 가정이요, 조상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던 가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도 75년간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던 가정이었습니다.

(수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고, 사래는 열국의 어미가 되리라는 놀라운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창 17: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창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물론 겉으로 보기에 거창한 축복 같지만 아브람의 부부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오히려 고향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1)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만 하였으며,

2) 이역만리 타향에서 정처 없는 방랑생활을 하여야 했고,

3) 흉년의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이 참고 견디어야 했습니다.

물론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접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다 할지라도, 그의 처 사래는 남편 때문에 덩달아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는 일을 위해서 자기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한 사람이 바로 사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하갈에게 여자로써 가장 견디기 힘든 멸시까지 받았습니다.

(창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그 때문에 분노한 사라는 아브라함을 닦달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갈도 아내요, 이스마엘도 자식이지만 사라와의 화목을 위해 아브라함은 혼자서 고민할 지언정 한 번도 사라와 불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창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창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둘째로, 사라는 고향을 떠나 25년의 세월이 지나 89세의 늙은 몸으로 이삭을 잉태하여 입 덫을 하면서 열 달 동안 기다렸다가 노산으로 죽을 고비를 겪으며 이삭을 출산해야만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월경이 끊긴지 이미 오랜 사라도 천사가 잉태의 소식을 전해줄 때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아서 웃기까지 했었습니다.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셋째로, 사라가 온갖 고생을 하여 90세에 낳아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 이삭을, 남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갈 때 자기에게 한마디 의논도 없었으나 묵묵히 참았습니다.

제삼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던 사라의 마음은 새까맣게 탔을 것입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은 하나님께 믿음의 조상을 택하심을 받은 후 더 편해지고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해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난을 부부가 견디어 내야만 하였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어떻게 그 험난한 과정을 참고 이겼는지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평가입니다.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벧전 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고 복종한 것은 아브라함이 자기를 너무나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짜증내는 아내 사라를 괴롭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사라를 열국의 어미로 택하신 것을 알고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놀라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순복하고, 아브라함은 사라를 귀히 여기며 사랑해야하는 책임을 끝까지 이행 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아브라함과 사라는 독자 이삭을 낳았으며, 하나님은 그 자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명문 가문이 되었습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3. 우리 가정에 주신 비전

가정을 세운 주체가 인간이고, 그 목적이 자신의 행복 추구라면 이기적이고 권태가 빠른 인간은 어려움이나 권태기가 오는 것이 현대 가정의 문제점입니다.

어느 때는 마음에 사그라지지 않는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부부가 한 주일 내내 대화가 없고, 부부싸움에 폭력이 동반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자리를 거부한 채 각방을 쓰고, 상대방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골라서 말하고 행동하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받은 고통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칼을 가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더 이상 참으로 수 없어서 법원을 찾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배우자의 불륜이나 배신, 사업의 실패나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성격 차이로 인한 대화 부족, 상습적인 술주정과 폭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부부간에 심각한 분쟁과 갈등을 하고 있는 부부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고통이 크겠지만 그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거나 공중 분해된다면 최대의 피해자는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되며, 그 영향은 당대가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불행을 자손들에게 대물림하고 그 자손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전염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명연설문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케네디 대통령이 오스왈드에게 암살된 날이다. 오스왈드는 불행한 가정이 낳은 희생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였고 두 번째 남편으로부터 구타까지 당하며 육체적정신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 자랐다. 사건 당일도 아내에게 쫓겨나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호소했으나 화를 내며 받아주지 않자 오스왈드는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숨겨둔 장총을 꺼내들고 얼마 전 취직한 회사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케네디를 저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도 아내에게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불행이 그같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가정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인 것입니다.

(마 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가정을 세워주셨을까요?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목적을 보게 되면 놀라운 비전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본래 남남이었던 우리가 부부가 되어 가정이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는 마치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 나무처럼 번성하듯, 가정도 단순히 한 가정이 아니라 그 가정 속에 민족과 국가와 세계라는 비전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가족 간에 서로 먼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베푸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어떤 상처와 배신을 내게 주었을 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은 화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십자가에서 당신을 못 박는 원수들을 위해 사죄의 기도를 드리신 것을 닮고 배워야 합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하나님을 믿는 부부와 믿지 않는 부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단순히 자기 행복 추구를 위한 부부 사랑과 자손의 번성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거룩한 교회가 되어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태어나 온 세상에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대부분의 초대 교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지난 날 교회사를 보면 교회들이 박해를 받아 문을 닫게 될 경우에도 가정 교회들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을 지켜왔으며, 교회를 세우는 일꾼들이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부부사이에 상처와 오해를 훌훌 떨어버리고, 내 가정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키고, 가정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른 것처럼 순종하고 섬기는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부부는 가정이 단순히 서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아니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지켜나가는 파수꾼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남편에 대한 복종과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어느 경우에는 한쪽이 미안하다고 사과와 용서를 구해야 할 만큼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화가 나서 당장 가정을 뒤집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고비를 우리가 잘 넘겨야 합니다. 설령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부부는

1)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말아야 하고

2)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하고

3)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거나 부모형제를 욕하지 말아야 하고

4) 해가 지도록 분을 내지 말고 화를 품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야 하고

5) 내가 먼저 자존심을 깨고 상대방에게 화해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는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가정이 되는 길입니다.

1) 아내의 행복 없이 남편의 행복 없고, 남편의 행복 없이 아내의 행복도 없으며

2) 남편의 만족 없이 아내의 만족 없고, 아내의 만족 없이 남편의 만족도 없으며

3) 아내의 건강 없이 남편의 건강 없으며, 남편의 건강 없이 아내의 건강도 없습니다.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그래서 성령 충만한 가정, 화목한 가정, 행복을 대물림하는 가정, 복음을 세상에 경작하는 교회와 같은 가정을 만들어 가기위해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사과할 것을 사과하고 용서해줄 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부부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비전인 교회와 같은 가정을 만들고 아브라함과 사라보다 더 나은 가정 천국을 이루어 자손만대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부부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