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부부

성경적 부부/벧전3:1-7

성경적 부부/벧전3:1-7
2008-10-30 15:00:51 read : 62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1-7

이 세상에서 천국과 제일 비슷한 것이 있다면 가정일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을 섬기며 평화와 사랑으로 함께 사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지옥과 가장 비슷한 것 역시 가정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서로 싸우고 자녀들이 사악한 세력에 내팽겨진 경건치 못한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 천국 같은 가정을 누리고 계십니까? 지옥 같은 가정을 누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시는지요?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완전하고 작은 사회구성 단위입니다. 가정이 있기 때문에 나라와 세계가 있고 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가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교회를 건물로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교회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여러 가정들의 도덕성, 윤리성, 영성, 지성의 수준에 따라 결정됩니다. 국민의 도덕적 수준과 영적 수준,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범죄와 폭력을 퇴치하려는 어떤 노력도 가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효과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의 가정이 먼저 확실하게 서야 합니다.

좋은 가정에는 좋은 부부가 있습니다. 부모가 어려운 관계에 놓여있는데 그 가정이 잘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좋은 가정의 조건은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의 좋은 관계입니다. 본문 말씀은 아내와 남편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덕목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평생 잘 가꾸고 꾸준히 유지하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보며 남편의 마음이 즐거우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자기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아내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기에 인류의 절반인 여자 가운데 딱 한 명을 뽑아서 결혼한 것 아닙니까!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잘 개발하라고 합니다. 즉 남편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움을 개발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순복’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1절). 아내의 내적 아름다움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던 남편들이 예수를 믿고, 믿음이 약한 사람이 좋은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의 많은 남자들이 아내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금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많은 남자들이 손을 들 것입니다. 한국 교회 역사가 그렇습니다. 남편들의 신앙이 성숙하는 것도 역시 아내 덕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들의 믿음과 기도와 헌신으로 남편들이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가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내에게 존중과 인정을 받는 남자는 어디 가도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밖에서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요. 남편이 가진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아내들이여, 남편을 존중하라. 존경하라. 그들을 세워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한 부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은 교회에 안 나오는데요, 어쩌다가 기적이 일어나면 나옵니다.” 그 부인은 그동안 남편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정말 잘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자기 생일날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속상한 것을 가슴에 안고 말도 않고 남편을 받들며 살아야 되나? 30년을 그렇게 살았으면 됐지, 오늘부터는 그렇게 안 할 테야! 나도 이제는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날 저녁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집어 치워!”하시더라는 겁니다. “30년 동안 남편을 위해 헌신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다니! 네 남은 생애도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맡기고 너는 남편을 계속 돌보고 존경하고 받들어라” 하셨답니다. 그 부인은 바로 회개하고 마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참 예수 믿는 여자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가 자기를 믿고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받들어 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여러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남편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많은 남자들 가운데서 한 명을 선택해서 내 남편 삼아주셨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남편을 끝까지 존귀하게 대하는 마음이 예수 믿는 아내로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본문 2절에는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습니다. 왜 영적으로 아내가 도움이 됩니까? 안 믿던 사람도 결국 예수 믿게 되고, 신앙이 약했던 사람들이 강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 ‘두려워한다’라는 말은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들이남편 앞에서 벌벌 떨라는 말이 아니라 존경하고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지요. ‘정결한 행위’는 깨끗하고 산뜻한 모습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볼 때 아내의 말을 믿고 아내가 믿는 신앙을 따르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런 모습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이 늘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내면의 세계를 어떻게 아름답게 만드나? 4절에 “온유함과 안정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온유하다’(gentle)는 부드럽다, ‘안정감’(quiet)은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뜻입니다. 부드럽고 차분하며 그 안에 내적인 힘이 있어서 안정감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면서 안정감을 갖추고 바깥세상의 온갖 풍파에도 차분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는 아내는 남편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4절)이란 보이지 않은 마음속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온유함과 안정된 마음을 개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를 들었습니다. “남편을 주(主)라고 부르며 두려운 마음 없이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그만 일에 놀라서 야단법석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위험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며 살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안정감과 차분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차분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신앙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안정감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내에게 안정감이 있으면 가정이 안정되고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드러움과 차분한 모습을 계속 개발해 나가라고 권하고 계십니다.

영화를 보면 종종 폭력적인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폭행하려고 하면 여자는 무서워서 도망가다가 넘어져서 벌벌 떠는 장면을 볼 때가 있지요. 저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여자가 그런 남자를 한 방에 눕히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 이 여자 함부로 손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힘이 아니고 부드러움에 있지 않겠습니까! 남자들이 왜 여자들과 결혼했습니까? 여자의 손을 만져보고 결혼한 겁니다. 손이 다으니까 부드럽고 전기가 와요. 살결도 부드럽고 목소리도 부드럽고, 남자들이 그 부드러움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 부드러운 여자가 어느 날 아침에 소리를 지르면 정이 뚝 떨어지죠. 아무리 폭력을 행하고 싶어도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아내들이 남편을 존경하고 부드러움과 차분함으로 내면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고 그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그런가하면 예수 믿는 여인들은 외면의 아름다움도 개발해야 합니다. 한국어 성경은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3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머리도 꾸미지 말고 금가락지도 끼지 말고 옷도 더러운 것을 입으라는 뜻일까요? 번역을 할 때 원문 성경의 한 글자를 빠뜨렸습니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만 하지 말고” 차이는 “외모로 하지 말고”가 아니라 “외모로만 하지 말고”입니다. “외모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지요.

물론 여자들이 남자보다 외모가 아름답지요.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세수만 하면 그만인데 여자들은 30분씩 앉아서 얼굴을 열심히 가꾸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한대로 돌아오니까요. 남편이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남편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아름다운 아내가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단장하고 있는데 안 좋아할 남편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아내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목걸이도 하고 머리도 꾸미면 누가 칭찬받는 줄 압니까? 남편입니다. “저 여자의 남편은 아내가 옷 살 돈을 자주 주나봐.” 반대의 경우, “저 남편은 얼마나 구두쇠면 아내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닐까!” 공연히 남편이 욕을 먹습니다.

제 아내와 제가 두 살 차이인데, 아내가 자기를 가꾸는데 투자하는 것을 보면 저의 100배는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 아내가 저보다 10년은 더 젊어 보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가 잘 해서 그런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아내가 아름답고 멋있으면 남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아내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남편에게 인정을 받으면 그 실력을 남편한테 발휘합니다. 넥타이 하나를 골라도 멋진 것을 골라주지요. 옷을 살 때도 미적 감각이 탁월합니다. 남편을 돋보이게 하지요. 아내가 겉과 속을 함께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가정에 큰 축복이 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고 사람은 외모를 본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내면을 보아야 하며, 외모를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입니다. 인간은 겉을 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겉을 본다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가 하는 것을 쳐다보고 배우신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꾸준히 아름답게 잘 가꾸어야 합니다. ‘아 옛날에 결혼했을 때에는 예쁘게 하더니 나이가 든 다음에는 될 대로 하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들은 천국 갈 때까지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 아름다움을 꾸준히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도 즐겁고 남편과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아내에 대해서 여섯 절, 남편에 대해서는 한 절만 언급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반대로 하였습니다. 여자에 대해서는 조금, 남자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했지요. 밸런스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남편들에게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7절)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내에 대해 공부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아내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라는 뜻이지요. 내 아내가 무슨 말을 좋아하고 무슨 말은 싫어하는지, 아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어느 부분을 내가 도와줘야 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지를 잘 아는 아내 전문가가 되라는 말입니다.

남자들은 자기 아내는 잘 관찰하지 않고 가끔 남의 여자들을 관찰할 때가 있지요. 베드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네 아내를 철저히 이해하고 파악하라. 아내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아내를 괴롭히는 말 대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말을 하며 함께 살라.” 남편들은 앞으로 아내에 대해 더욱 잘 아시기를 바랍니다. 아내가 어떤 때 약해지는지, 어떤 때 낙심하는지, 어떤 때 힘들어 하는지, 어떤 때 좋아하는지 잘 알아서 아내가 기쁘고 만족하게 살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7절).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약한 것을 말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육체적인 폭력으로 대립하면 결과는 뻔 합니다. 오히려 아내에게 부드럽게 접근하고 그 연약한 부분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남자들에게 힘을 주었나? 그 힘으로 아내를, 여자를 도우라는 것이지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라”(7절). 무슨 말입니까? 아내는 이 땅에서 얼마동안 함께 살다가 헤어질 사람이 아니라, 저 천국에 갈 때까지, 그리고 영원히 유업을 함께 받을 영원한 동반자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아내는 이 어려운 인생의 여정 가운데 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남편과 두 손을 잡고 함께 갈 사람이며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 동반자입니다. 이런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귀히 여기라”(7절)고 했습니다. 인간은 다 귀한 존재입니다. 우주보다도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천해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온 세상보다 더 존귀한 존재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 상대방의 자존감과 가치를 북돋아서 서로가 귀한 사람과 함께 산다는 만족감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경하고 존귀하게 여긴 결과는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 잘 됩니다.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7절)고 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남편과 아내 사이가 나빠지면 신앙생활이 안 된다는 겁니다. 기도도 안 되고 성경도 읽고 싶지 않고 심지어 교회조차 가고 싶지 않아요. 신앙생활에 절대 도움이 안 됩니다.

부부가 서로 아끼고, 아내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개발하고 유지하며 남편은 아내를 존귀한 자로, 영원한 동반자로 생각하며 살아서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고 우리의 가정이 천국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