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와 그리스도인의 가정 벧전4:7-8
가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다 모여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참 사랑, 참된 안식, 그리고 참 평화가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또한 가정은 한 시대의 도덕적인 가치관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한 시대의 건전성이나 한 나라 문화의 건전성을 알아보려면 가정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이 건전하지 못하면 그 시대와 나라도 건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가정의 붕괴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성도들의 종말론적인 신앙에 대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말세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성경은 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말세, 사랑, 기도’ 라는 세 단어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이 단어들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세가 될 수록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변질되어 갈 것입니다. 사랑이 변질되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이 가정이입니다. 동시에 가정이 상처를 받고 행복하지 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적으로 큰 손해를 봅니다. 기도가 막히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는 부부는 기도생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 붕괴 현상
우리는 먼저 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는 가정 붕괴의 현상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쓴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시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지요. 엘빈 토플러는 이 책에서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앞으로 우리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 11장은 “파괴될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습니다. 기분 나쁜 제목입니다. 여기에 보면 미래사회는 초 산업시대가 되어서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수정란을 베이비 센타에 보관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죄악시하는 시리즈 결혼이라든지 실험 결혼 등이 성행할 것이고 동성연애가 법적으로 공인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가정의 파괴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이 나온지 30년이 지나가면서 그가 예측한대로 이런 일들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예언한 인공수정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복제까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가정의 파괴 현상도 현실화되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가정문제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은 그들의 통계에 의하면 3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가정이 늘고 있고 미혼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문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이 시험관 아기를 사서 자기 자녀로 호적에 올려서 화제가 된 사건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가정의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시대는 가정의 소중함, 가정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기는 정치적인 위기, 경제적인 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가정의 위기입니다. 가정의 위기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월드컵 16강에 들어가야 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이 땅의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해 결혼하는 수의 1/3정도가 이혼을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는 윤리적인 위기를 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될 수록 가정이 깨어지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가정이 붕괴되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이혼입니다. 이혼율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혼이란 단순히 남편과 아내라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혼은 한 가정의 깨어짐입니다. 결혼하여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은 마치 종이 두 장을 풀로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풀로 붙인 종이를 나눌 수 있습니까?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찢어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같이 살다가 싫어지면 헤어지는 것이 이혼이 아닙니다. 가정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평생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부모가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삶의 근거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성도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하십니까? 건강하다는 물음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당신은 지금의 결혼생활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기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의 60%의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헤어지겠다는 말입니다. 이 설문조사가 오래전에 되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 퍼센트는 더 올라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황혼이혼’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나라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40대 이혼이 늘어갑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정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요즘에 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 논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의 문제를 다른 책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가정세미나. 부부세미나 등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통일교에서는 아예 전도전략을 가정에다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 가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구논문이나 책이나 세미나를 아무리 많아도 정작 무너지는 가정을 세울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붕괴, 그 근본적인 원인
보십시오. 가정이 깨어지는 이유가 남여의 성적인 차이 때문입니까?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나 기질이 다르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결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가정이 깨어지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가난한 가정은 다 이혼해야 합니다. 무엇이 행복한 가정을 무너뜨립니까?
가정의 문제를 말하려면 결국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정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가정에 불행이 왔는지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이룬 최초의 가정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살게 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행복한 , 그야말로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한 순간에 행복을 잃어버리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행복을 빼앗아 갔습니까? 성경은 그들의 가정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죄라고 말합니다. 여자가 뱀의 유혹을 받아 따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죄가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생긴 문제가 바로 가정문제였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요. 아담은 처음 하나님이 주신 아내 하와를 보고는 너무 놀라면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난 이후 하나님의 추궁 앞에서 선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보십시오. 죄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를 탓하는 처참한 부부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후 이어지는 결혼생활은 가히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독과 중노동, 해산의 고통, 그리고 자녀들의 칼부림과 살인사건 등등 어쩌면 아담과 하와는 그 이후 한번도 사랑 같은 사랑을 맛보지 못한 채 그들의 일생을 마쳐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낭만적인 사랑을 퍽 좋아합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은 죄를 범한 아담이후 그 피를 물려받았고, 더러운 부패성과 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순애보의 사랑을 갈망한다 하더라고 사실 우리들은 이기주의자입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요 죄로 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사랑하는 사이가 미워하는 사이가 되고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합니다만 결혼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죄성이 들어나고 이기심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 결혼생활한지 10년 정도 지난 분들에겐 어느 정도 실감이 날 것입니다. 신혼 때에는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 라고 생각하던 부부들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각자 서로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해주지 않는가? 이것, 저것을 요구하게 되지요. 말하자면 이기심과 정욕이 그 마음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이 둘을 낳으면 아내들의 요구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남편도 숨기고 있던 이기적인 요구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 때쯤 부부는 서로에게 실망하게 되고 부부싸움이 잦아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우기에는 너무 고약한 토양입니다.
말세에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인간을 유혹하는 일이 그 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에 쉽게 노출됩니다. 사회구조가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인 죄성을 자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악한 사단은 이런 인간들의 죄성을 자극하여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망하게 하는 사단의 최고의 전략은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정이 무너지면 그 속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문제도 대부분 깨어진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약이나 폭력도 깨어진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붕괴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낳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모르는 가정은 언제든지 마귀에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관계가 깨어진 가정을 노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랑이 없는 가정, 부모와 자녀사이가 갈라진 가정들이 마귀와 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한 가정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산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시편127:1-2은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오늘 본문에 보면 말세가 될 수록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가정에 주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변질된 사랑으로 가정이 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악한 마귀와 죄가 우리들의 가정을 흔들지 못하도록 기도에 힘쓰야 합니다.
여기에서 ‘정신을 차린다’라는 말은 ‘깨끗한 마음을 가진다’ 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기심이나 욕심으로 가득찬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 아닙니다. 보세요. 언제 사람들의 마음이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기주의자가 될 때입니다. 자기만을 알고 자기 욕심만을 차리는 사람을 보세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 마음입니까? 상대방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관계를 깨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악한 사단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또 ‘근신하라’라는 말은 자기 통제, 자기 절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술에 취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술에 취하면 자신을 바로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그 감정을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 감정을 폭발시켜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정말 악한 세대로부터 가정을 지키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왜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섭섭하게 하느냐? 라고 말하기 전에 남편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툼, 부부싸움을 버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3:7에서 아주 흥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혹시 아내를 무시하거나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남자가 있다면 기도응답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남편과 대화가 끊어지고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가 있습니까?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싸움은 우리를 영적으로 곤고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기도의 제단에 가족들의 이름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기도는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가정을 향해 오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길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어떤 자매의 기도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분의 남편은 직장도 변변찮습니다. 거기에다 성격까지 이상합니다. 제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 이쁜 자매가 왜 그 사람과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한번은 깊은 고민에 빠져서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이혼할까요? 참을까요? 그 자매의 미래와 좀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이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참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혼하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자매가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매의 기도를 들은 것 같습니다. 남편의 직장이 생기고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악한 마귀의 유혹에서 가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사랑으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변질된 사랑, 이기적인 사랑으로 가정이 깨어지는 이 시대에 성도들의 가정을 온전히 세우려면 진정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족간의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세우는 길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완전한 사람으로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다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모자라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다릅니까? 어쩌면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을 가장 쉽게 가장 자주 노출시키는 관계가 부부관계 같습니다. 여지없이 자기를 개방하는 상대가 바로 남편과 아내사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점과 허물이 있어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쯤 되면 다 사랑에 눈이 멉니다. 모자라는 것, 허물, 약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려주는 것입니다. 가정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허물을 가려주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다 가려 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생활이 계속되면서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이 점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신혼 때에는 몰랐는데 남편의 허물이 보이고 아내의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 식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결혼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 사랑이 메마르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을 붙들어 매는 끈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때 어떤 작가는 결혼생활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 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고 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어떤 사람은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참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먹고 십년쯤 지나면 부부 싸움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내친 김에 어떤 분이 말한 것 하나 더 말해보십시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 그리며 살고, 20대 때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사랑이 없이는 세우질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말세가 될 수록, 가정에 위기가 닥쳐올수록 더 열심히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사용된 사랑이라는 희랍어 단어가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란 하나님이 갖고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아가페란 오직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사랑에만 사용하는 독특한 단어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가족간에 이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낭만적이고 에로스적인 사랑은 연애할 때나 필요한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더 이상 감정적인 사랑인 에로스에 매달리지 말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 사랑의 냉각기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사랑, 감정적인 사랑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덮어주는 사랑,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과거가 좋지 못한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게 했습니다. 호세아는 순종합니다. 다행히 부부가 살다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라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첫 아들 이스르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첫아들을 낳은지 얼마 있지 않아 부부 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멜은 호세아와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멜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두 사람은 깊은 갈등 속과 고민을 감춘 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이 가정을 꾸려 나갑니다. 이 때쯤 호세아의 마음에는 고멜의 부정함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호세아는 두 번째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그 아이가 태어나자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호세아의 마음에는 아내 고멜에 대해 계속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해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은 ‘로암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호세아도 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 고멜은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정부와 함께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그 정부도 고멜을 버리게 되고 노예시장에 팔아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호세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노예시장으로 가서 고멜의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고민하던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간음한 아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경은 고멜이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범하고 하나님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받아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더군다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했습니다. 아들을 희생하고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우리들에게 보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들에게 바로 이 사랑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이 아가페의 사랑의 죄로 얼룩진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적인 사랑,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 이 아가페의 사랑이야말로 가정을 죄와 마귀의 손에서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는 가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남편의 허물을, 자녀의 잘못을 의지적으로 덮어주는 사랑만이 가정을 이 악한 세대에서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도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말세에 이 땅의 일어나는 더러운 사상, 악한 가치관이 우리 가정 안으로 밀려들어오지 않도록 튼튼한 담을 쌓는 것은 기도와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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