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건하게 바로 선 가정 행10:1-8 만약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요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사람의 이름을 쓰시라면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불행하게 요즈음 우리들에게 존경할 만한 모델이 별로 없다는데 오늘의 비극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부모의 이름을 적을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다시 이렇게 반문해 보시기 바람니다. 지금 내가 키우고있는 우리의 자녀들은 누구의 이름을 적을까? 과연 우리의 이름을 적을수있을까? 아마 그런 가정이 있다면 그가정은 자녀교육에 성공한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입니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왜냐 하면 가정은 이기 집단이 아니라 혈연으로 뭉쳐진 사랑의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바로서야 교회가 바로설 수 있고 가정이 바로서야 국가가 바로설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점점 헤체되는 병리현상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집(house)만 있지 가정(home)은 없는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집이란 사람들이 잠시 거주하고 잠을자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집은 나무와 벽돌로 세워지는 것이지만 가정이란 세상의 어떤 물건이나 돈으로 세워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현대 사회구조가 매우 바쁘게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바쁜 일과에 쫓기고 자녀는 자녀대로 학원과 공부에 쫓겨 삽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며 식사할 시간도 갖기가 좀처럼 힘든 현실입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얼굴을 잘 모르는 유치원 어린이들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는 산업사회가 됨에 따라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회가 산업화가 되면서 안고있는 가족공동체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물질과 현대의 구조적인 사회를 쫓아가기보다는 성경적인 가정,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가정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나가야 할것입니다. 1960년대만 하드라도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결혼가정의 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0%를 넘고있으며 미국은 50% 러시아는 무려 70%를 넘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결혼해서 죽을때가지 그냥 사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가정들이 병들고 있고 매우 빠른속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가정을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가정이 튼튼히 서려면 무엇보다도 부모가 하나님앞에 바로서야 합니다. 특히 가정에 기둥역활을 하는 아버지가 자기위치에 바로 서있어야 합니다. 가정중심에서 흔들리지 말고 바로서있어야 합니다. 그저께 뉴스를 보니까 인천 갈산동에서 어떤 아버지가 카드빚에 몰려 자기 부인과 딸을 살해하고 도망을 했고 몇일전신문에는 가난한 시집에 결혼을 시댁을 위해서 평생을 섬겨왔는데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외도만하고 딴 살림만 하여서 부인 혼자 늙은 부모님을 모시면서 생계를 꾸려왔는데 부인이 뇌졸중에 걸리자 남편이 다른여자와 살려고 못살겠다고 이혼소송을 했는데 법원에서 평생벌은 돈 똑같이 반을 8천여만원을 위자료로 주라고 판결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한가정에 가장인 아버지가 바로 서야지 그가정이 튼튼히 서지 아버지가 흔들리고 아버지가 바로서있지 못하면 온가족은 고통을 당하고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을보면 아버지가 바로선 아주 모범적인 가정을 볼수가 있습니다. 바로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만큼 아주 경건한 가정이였습니다. 그당시 고넬료라는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왔는데 직업군인으로 병사들을 데리고 있는 매우 바쁜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에도 예배생활과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경건생활은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온 족속이 그를 칭찬했고, 그의집에 하인과 종들까지도 자기 주인은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인정을 하였습니다(10:22). 더욱 귀한 것은 그런 그의 경건한 신앙을 가족들이 인정하고 함께 따라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베드로를 초청했을 때도 일가친척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까지 다 함께모여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가아사랴에 있는 이달리아대라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당시 가아사랴는 로마의 총독부가 있던 곳으로 당시 이곳에는 다섯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군대가 이탈리아의 지원병으로 구성된 로마의 군대였습니다. 한 군대는 보통 600명으로 구성되었고, 백부장은 그 중 100명을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이런 전통 로마군대의 지휘관이었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정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닌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넬료는 과연 어떤 사람, 어떤 가정이었기에 하나님이 기억하셨을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가정도 고넬료와 같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적 가정은 예배가 살아있는 가정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인것입니다. 바쁘다고해서 가정에 경조사가 있다고해서 예배를 식은죽 먹드시 빠지고 예배를 멀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멀리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제단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경건생활은 바로 예배생활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 2절에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신앙이 독실하고 생활에 예의가 바르고 행실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에게 쓰일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경건은 야고보서 1 :26 -27절을보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아니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가르킵니다. 가장으로서 고넬료의 경건 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으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생활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인들은 이런 고넬료를 의인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깨끗한 사람(10:15)이라 부르셨습니다. 그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보면(11:3)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당시 남을 업신여기고 노략질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로마 군대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줄을 알고 그분을 섬기며 율법과 도덕을 따라 바르게 살았던 것입니다. 가장의 이런 경건한 생활은 온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가족들은 그를 신뢰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그의 삶은 가족들에게 자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의 아내 이름이 나타나있지 않은 것을 보면 이 가정의 신앙적 주인은 아버지요 남편인 고넬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비록 경건한 사람이라도 가족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삼하 6:20)이 그랬고, 그의 아들들이 그랬습니다. 장남인 암논은 의붓동생인 다말을 강간하다가 동생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셋째인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다가 살해당했습니다. 넷째인 아도니야도 왕의 자리를 탐내고 선왕의 후궁을 탐내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의 가정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아내도 자녀들도 그의 신앙과 생활에 감화를 받았고 하인과 종들까지도 주인의 경건함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고넬료의 지도를 따라 온 가족과 친구들이 베드로를 맞아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성령을 받으며,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가족들이 가장 잘 압니다. 아무리 경건한 척 해도 부모가 인정치 않고, 부부가 인정치 않고, 자녀들이 비웃는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감화가 온 집안에 영향력으로 미칠 때 진정 경건한 신앙인이라 할것입니다. 2. 고넬료의 가정은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하고 있던 로마의 군인들은 약탈과 방종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배받고 있는 유대인들 중에는 고난과 궁핍 속에서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17) 하신대로 경건을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자비의 표현입니다. 선거때가되면 때로는 위선자들도 후하게 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그러한 것은 아무리 많은 것으로 가난한자들에게 베푼다해도 그것은 진정한 구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꾸준한 사랑으로 이웃에게 베풀었고 온 가족에 마음이 하나가되어 함께 그들의 가진것으로 “많이 구제”를 할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제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베푸는 손길을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3. 고넬료의 가정은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장교로 그의직업으로보나 환경조건으로보나 기도하기 힘든 여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유대인들처럼 시간을 정하여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 기도하는(살전 5:17)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도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가 9시 기도시간에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기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까닭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구제를 기억하신바가 되었습니다(10:4, 31). 기도하던 고넬료와 기도하던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서로 연결이 된것도 기도생활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경건 생활의 기초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의논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의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살아있는자는 기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의 모습은 거울을 통해서 보지만 우리 내면의 모습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면의 모습을 보고 잘못된 부분들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고쳐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경건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을 살려면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참된 기도는 삶과 일치되는 기도입니다. 친구를 구원시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를 찾아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그런 기도는 행동함이 없는 죽은 기도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면서 돌보지 않는다면 이런 기도는 위선에 기도가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기도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은 기도의 능력이있고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어집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넬료는 아직 유대교에 개종도 하지 않았고 세례도 받지 않은 신앙의 초보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온 가족이 이처럼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분만아니라 로마의 군인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신앙과 생활에 본을 보였다면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가? 입술로는 신앙을 자랑하지만 식구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고 경건한 생활과는 거리가먼 탐욕의 생활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가? 사람들끼리 모여 세상이야기에는 시간가는 줄을 모르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시간에는 할말이 없는 벙어리는 아닌지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한 경건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자자손손 대대로 경건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고넬료의 가정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경건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