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한 사람

重生한 사람
벧전1:18-22





1. 보배피로 救贖받은 사람(18-19)


重生이란 말은 거듭 중 자와 날 생자를 써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한번 태어났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한번 더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요3에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벧전1:3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했고 벧전1:23에서는 우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중생했다는 말로 번역이 되기로 했습니다. (딛3:5) 그러면 어떤 사람이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입니까? 救贖받은 사람이 중생한 사람입니다.
18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속이라는 말은 구원할 구자에다 살 속자입니다.

성경 원문에는 ?????? 인데 이 말은 \'돈을 주고 노예를 사다가 풀어 해방시켜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잡을 구 자와 묶을 속자를 써서 감옥에 拘束했다는 말도 구속이라고 하는데 그것하고는 정반대의 말입니다.
베드로가 살던 당시 로마제국에는 약 5백만 명의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들은 그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노예상태에서 구속(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예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 주인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눈가가 그들을 위해 贖錢 즉 구속해 주는 돈을 지불하고 구속해 주기 전에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노예로 있던 사람이 누군가가 속전을 지불해 줌으로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우리가 구속이 되었다는 것은 그전에는 노예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다시 보면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했습니다.

망령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한 망령된 행실이란 공허한 삶, 무의미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보면 the empty way of life 또는 the useless way of life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던 사욕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삶을 살았던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던 삶은 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풍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았고, 아무리 큰 꿈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살지 않은 삶은 무익하고 공허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과거의 삶이 더 재미있었고 더 좋았다고 과거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빨리 마음을 바로 정리하지 못하면 사탄의 덧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민11에 보면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 거짓말을 보태 가지고 말했습니다. - 값 없이 -


민 11: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 하나님께서 반드시 충분한 영양분으로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먹지 않았으면 정말로 정력이 쇠약해 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상태에서 구속받은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것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내 모습은 이렇지 않는가 다시 한번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었으니 더 건강해지고, 장사가 더 잘 되고, 승진해야 되는데 왜 그런 것은 없습니까? 하고 불평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말입니다.

민11:18에 보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으시고 아주 노하셨습니다.


또 민16:13에 보면 \'왜 우리를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고 했습니다. 정말 망발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애굽의 노예살이에서는 구속이 되었었으나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그 전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골3:1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8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롬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의 원죄 - 모든 사람 죄인됨 → 사망에 이름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 유전
우리는 죄와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이 세상의 노예문제는 은이나금으로 해결해주고 구속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 문제는 이 세상은 은금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만이 그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19절 \'오직\'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the way)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래서 기독교는 독선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달리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구속해 줄 수 있는 贖錢이 되실 수 있으십니까? 19절 말씀을 보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라고 했습니다.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죄가 없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위한 속전이 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두 번 태어나는 사람은 (뱃속에서 한번 태어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한번 더 거듭난 사람은) 한 번 밖에 죽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한 번밖에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다시 말해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두 번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둘째 죽음이란 죽으면 끝나는 죽음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못에서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당해야 하는 둘째사망입니다.
이 지옥 형벌에서 우리를 구속해 죽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 세상의 그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죽어도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되다\'고 하였고,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잠14:32)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6개월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의 보배피를 흘려 구속하셔서 거듭나게 해 주신 것에 대한 이 감격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예물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무엇보다도 보배로우신 피를 흘려 구속해 주신 예수님께 대한 갚은 감사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살아야할 사람(20-21)


중생한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생이란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리면, 예수님께서 나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보배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드리면 어떤 죄가 있더라도 다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쉽게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의 공로로 구속을 얻어 중생한 사람이 되었으니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이런 이야기는 교회에 오면 매일 듣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18절 멘 앞에서 \'너희가 알거니와\'했습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물론이고 신약성경의 말씀도 2000년 전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그 말씀들을 반복해서 듣고 읽습니다. 찬송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찬송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를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말씀과 찬송가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다는 것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보배피를 흘려 주셨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 아침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중생한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라\'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탈출

홍해

마라의 쓴 물

광야 40년

여리고 성


성경은 거듭 거듭 말씀했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롬9:33, 10:11 벧전2:6)


3. 사랑하며 살아야할 사람(22-)


예수님의 보배피로 구속함을 받아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롬13:8에 보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이라\'고 했고 10절에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일4:11에서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했습니다.
또 4:20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있을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을 다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처럼 분별한 다음 양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시면서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양과 같은 사람들이 \'주님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 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염소와 같은 사람들도 \'주님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니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대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두 번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여졌는데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 내용에 따라 다 다르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그러니까 이 말은 처음에는 인간적인 정리나 동정에 이끌려 사랑하지만 그 정도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아가페의 사랑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희생적인 사랑의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은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서는 믿음으로 살고,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랑하며 사는 삶이 바로 주님을 바르게 따르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피로 구속함을 받아 중생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다가 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천국 잔치에 다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