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루시는 일
하나님이 이루신 일
왕하7:3-10
제가 지난 월요일 신문을 보는 가운데 그 유모어 란에 이런 내용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울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이 타고 가는 버스가 폭우를 만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농부가 그것을 보고 그 국회의원들을 다 한곳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몇 일 지난 후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경찰서장이 국회의원 전용버스가 낭떠러지에 추락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한 끝에 한 농부를 만나게 됩니다. 서장이 묻습니다.\"당신이 이 국회의원 버스를 처음 발견한 사람 맞습니까?\" \"예\" \"그러면 그 국회의원들을 다 어떻게 했습니까?\" \"아 예 제가 다 매장을 해주었지요!\" 서장이 놀라며\"아니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다 사망했다는 말입니까?\" \"예 개중에 몇 사람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살려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다 묻어 주었죠!\"
유모어지만 뭔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신 이 위대한 일을 전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이웃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그 사람들은 정말 정직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 라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고도 그냥 있으면 죽습니다.(3-8, 2-17))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있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이끌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꼼짝없이 성중에 갇혀서 함락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성중에 물가가 갑자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심지어 어떤 일까지 일어나느냐 하면 오늘은 내 아들을 삼아 먹고 내 일은 네 아들을 삼아 먹자 하여 오늘 내 아들을 삼아 먹었는데 내일 자기 아들을 내어놓고 삼아 먹기로 한 사람이 그 아들을 숨기고 내어놓지 않는 바람에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왕 앞에 오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즉 극심한 배고픔으로 인하여 온 성중의 백성이 이성을 잃고 사람까지 잡아먹는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성문 어귀에 네 명의 문둥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때 당시에 저주받은 병인 나병에 걸렸기 때문에 성에서 쫓겨 나와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서 성에서 내다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마리아 성에조차 먹을 것이 없는 판에 내다 버릴 음식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 네 명의 나병 걸린 사람들이 이런 결심을 합니다. 여기 있어도 먹을 것이 없어 죽고 성중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어 죽고 어차피 굶어 죽을 판인데 우리가 아람 진영으로 가서 항복을 하자 그래서 그들이 살려 두면 살고 죽이면 까지 것 죽자 이판사판이다. 하고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그런데 천지가 개벽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많던 아람 군대의 군사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이 친 텐트와 그들이 타고 온 나귀와 그들이 먹으려고 가지고 온 식량은 그대로 있는데 군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 네 명의 문둥이들이 그 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정신 없이 음식을 먹습니다. 그 구절이 5절과 8절입니다. 보시겠습니다.\"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그 문둥이들이 진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것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6절에서 7절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람 군대의 진영에 그들이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엄청난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적당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군대 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 그 소리를 듣고는 도저히 오금이 저려서 도망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소리에 기가 질린 아람 군대들이 혼비백산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쳐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얼마나 급했든지 말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을 쳐버린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대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죽게된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피 그들의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엄청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할 요소는 하나님께서 그 엄청난 구원을 그 엄청난 기적을 베푸셨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이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살고자 하면 그들이 구원을 얻고자 하면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일을 믿고 나아갈 때 그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갈 때 비로소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떠남으로 죽은 인생입니다. 죄 가운데 빠져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성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어 죽게된 것처럼 우리도 죄라는 성에 갇혀 영적으로 죽게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고 로마서 6장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게된 자요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습니다. 마치 죽게된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을 살리듯 오늘 우리가 사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거기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시면서 까지 우리가 살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살길 위해 아람 진영으로 달려가야 하듯이 우리도 살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그냥 있으면 죽습니다.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역사를 믿고 그 능력을 믿고 갈 때 거기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설마 하지 마세요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다가 지옥 간지 모릅니다.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인 십자가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거기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전도지를 뿌리는데 그전도지의 내용이 참 특이했습니다. 다른 전도지는 다 교회 오면 질병이 낫습니다. 교회 오면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10가지의 원리 뭐 이런 것인데 이 전도지는 당신이 지옥 가는 방법은 하고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을 펼치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대로 있으면 당신은 지옥 갑니다.\"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옥 가기 위해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있으면 지옥 갑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로 나와야 합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엄청난 소리를 듣고 물밀 듯 나가듯 오늘 우리도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구원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모두가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고도 잠잠하면 안됩니다.(9-10)
오늘 본문 9절 이하를 보시면 이 네 명의 문둥이가 정신 없이 먹고 있다가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거 우리만 먹다가 큰일나는 것 아니가 이거 우리만 먹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들은 스스로 가책을 느꼈습니다. 9절입니다.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문둥이의 위대성을 깨닫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실에서 문둥이들이 그들에게 나아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그 먼저 어려움은 한 맺힌 부분 때문입니다. 이 네 명의 문둥이들은 정상적인 저 사마리아 성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무시와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을 인간이하로 취급했습니다. 자기들을 볼 때마다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이 네 명의 문둥이는 큰 수취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네 명의 문둥이들은 갖은 수모와 서러움을 저들로부터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원한을 갚을 때가 왔습니다. 그들로부터 받은 수모를 한순간에 갚아줄 찬스가 왔습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침묵만 하면 됩니다. 그저 모른 체 만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들은 자연히 굶어 죽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원한은 손대지 않고 갚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먼저 그들에게 닥치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어려움은 그들이 가서 말할 때 과연 그들의 말을 저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그대로 믿어줄지가 의문입니다. 그토록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말도 믿지를 못하는데 이 네 명의 문둥이 말을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만에 하나 믿어주면 천만 다행이지만 오히려 화를 내며 매질하거나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도 잡아먹는 판에 이 문둥이들의 생명을 누가 귀히 여기겠습니까? 불똥이 잘못 띠어 오히려 화풀이로 그들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런 위험을 부담하고 그들에게 나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장애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네 문둥이의 위대성은 그런 장애를 뛰어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우리가 전도하는데 닥치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입 뻣뻣하다 두려움이 많다. 아는 것이 없다. 초신자다 뭐 말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 네 명의 문둥이처럼 이런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저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살아나듯 이 월포가 살아나고 이 도성이 하나님의 이루신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10장에 보시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제사장이 지나다가 보고는 피하여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레위인도 그곳을 지니다가 보고는 피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여행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여기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다 바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은 침묵하는 자를 통하여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회피하는 자를 통하여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초라하지만 비록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외치는 자를 통하여 무언가 도우려고 하는 자를 통하여 생명이 살아나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침묵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이 위대하신 역사를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