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역사를 가능의 역사로 바꾸자
불가능의 역사를 가능의 역사로 바꾸자
왕하4:32-37
자!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ㅣㅣㅣㅣㅣㅣ\" 이 6개의 선을 움직여서 원을 한번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단 절대로 휘거나 구부리면 안됩니다. 한번 머리 속에 각자 만들어 보세요 어떻게 해야 멋있는 원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다 머리 속에서 만들어 보셨나요. 그럼 정답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은 \"₩\"입니다.
원을 만들라고 하니까 둥그런 원만 생각해서 일찌감치 포기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구부리지 않고, 저 선으로 어떻게 원을 만들어, 내 머리로는 안돼. IQ 두 자리 숫자로는 도저히 모르겠어 하며 일찌감치 생각을 접어두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좀더 다르게 먹었더라면 고정관념을 깨뜨렸더라면 쉽게 정답을 맞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엄청난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것은 합리적 이성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에게 \'죽은 사람은 도저히 살려낼 수 없다. 죽으면 끝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물 앞에 손도 안 대보고,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불가능의 종교가 아니라 가능의 종교입니다. 성경에 보면 도저히 우리 이성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진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무슨 사건인지 알아보고 은혜 받길 바랍니다.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을 잘 섬기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넴이라는 동네를 지날 때마다 그 여인은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고 집안으로 불러드려 음식을 주고, 또한 잠잘 수 있는 방을 주었습니다. 너무나도 극진히 자신을 잘 대접하는 여인에게 뭔가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해줄까\'하다 그 여인을 위하여 좋은 선물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이 없음을 발견했고 1년 후에는 예쁜 아기를 품에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가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해갔는데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르더니 맥도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죽자 난리가 났습니다. 아들이 없었을 땐 그냥 살았는데 잘 크던 아들이 죽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살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갖았습니다. 아들이 없던 상황에서 아들을 주었던 \'엘리사 선지자라면 이 죽음도 문제될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없이 그를 먼 곳에서 모셔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오니 죽었던 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났습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암흑이 광명으로 바꿔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불가능의 상황이 가능의 상황으로 바꿔졌습니까?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만 알아낸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 있던 어두움이 벗겨질 줄 믿습니다. 낙담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줄 믿습니다. 불가능한 사건이 가능의 사건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본론)
1.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왕하4:32)
1)본문설명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몇 살 때 ,무슨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지는 본문에 잘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충격으로 기절한 것이 아니라 원문상으로 완전히 호흡이 끊어진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엘리사도 이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왜 이 아이는 죽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아이는 선지자를 잘 대접한 대가로 받은 귀한 선물이지 않습니까? 그런 아이가 잘 크다가 죽었다니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좋았던 수넴 여인의 신앙을 확인해보고자 하나님께서 test해 보시는 것입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신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그 이후로 신랑에게는 관심 없이 멋진 다이아몬드반지에만 관심이 가 있다면 신랑이 좋아하겠습니까? 미련하고 어리석은 신부이지요? 이처럼 축복의 선물인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길 원했던 test인 것입니다.
2)성경적 연결 :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범죄 후 모든 사람들은 죽게 되었습니다. 에녹과 엘리야만 빼놓고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종착역은 죽음인 것입니다.
3)적용: 그 중에서도 자녀의 죽음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자녀의 죽음은 어디에 비길 수 없는 슬픔입니다.
우리 교회 앞에 사는 \'미친 아줌마\'가 있습니다. 화단에서 담배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 잡아놓고 삿대질하며 욕하는 아줌마입니다. 허상을 보고는 쉬도 때도 없이 쌍스러운 욕을 해댑니다. 한마디로 정신나간 아줌마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렇게 된 이유를 소문으로 들어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를 났다가 그만 자녀가 죽는 바람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죽음이 얼마나 가슴 아프기에 한 어머니를 미치게 만들었을까요?
아마 이 수넴 여인도 엘리사를 찾으러 가는 길이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금이 저려서 다리가 떨어졌겠습니까? 간장이 다 녹아 내렸을 것입니다. 이런 여인의 눈물어린 눈빛 앞에 엘리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는 이 죽음이라는 것을 젖혀 두고서라도 수없이 많은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허우적 거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앞에 우리는 좌절하며 절망하고 있습니까? 정말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엘리사는 죽음 앞에 항복하지 않고
2.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왕하4:33)
1)본문설명 :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는 이 아이를 죽은 자로 본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한 사람으로 보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영상으로 그가 살아나리라 확신했던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 기도하고\"란 말이 엘리사의 사역에 중요하므로 이 말이 그의 사역의 첫 순서로 소개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예수님 다음으로 성경 속에 많은 이적을 행한 선지자였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능력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해볼 만도 한데 하지 않습니다.
그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죽음도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2)성경적 연결 : 믿음의 왕이었던 히스기야 에게 큰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침략하러 올라왔습니다. 첫 번째 침입에는 돈으로 입을 막았는데 두 번째 올라온 것 보니 결판내자는 것 같았는데 군사적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매달렸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잠자고 일어나 보니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군사 십팔 만 오천 명을 죽였던 것입니다. 십팔 만 오천 명이 죽었으니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었겠습니까? 자기 나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3)적용: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꼽추인 한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에 그는 주를 위해 충성하리라 하며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회자가 되었지만 꼽추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주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강원도 한 시골 교회에서 목회자를 초청하기에 그곳으로 부임해갔습니다. 그러나 꼽추인걸 알고는 성도들이 오지 말라고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못을 박으리라며 사역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꼽추인 목회자를 꺼려하며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사님의 진실성, 열심, 사역의 열정이 알려지고서는 조금씩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 전도사님은 매일 밤마다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종이지만 꼽추라서 덕이 되지 않습니다. 꼽추는 사라지고 정상인이 되게 해주세요\'7년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7년째 되던 해 부활주일을 앞두고 특별작정기도를 했습니다. 한 맺힌 꼽추병은 사라지고 정상인이 되게 해달라고....
그의 간절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부활절날 기도하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구부러졌던 어깨와 등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0%가 정상인으로 회복되었다는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안 될게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데 무엇입니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일이 내 주변에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사업이 할 때마다 안되나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십니까? 사는 게 너무나 지치고 힘드십니까? 자녀 때문에 속썩이십니까? 기적의 현장으로 나오십시오 기도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보지 못한 일들을 우리가 아니 내가 직접 체험할 줄 믿습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3.죽은 아들이 살아남(왕하4:34-35)
1)본문설명 : 죽은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엎드리니 아이의 몸이 차차 따뜻해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사의 기이한 행동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엘리사의 행동은 죽은 아이를 기필코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온몸을 다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 주님은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옷을 벗기는 수모도 참으시고, 죽음까지도 내어 주시므로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다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시므로 우리는 죄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엘리사도 입을 그 입에 ,눈을 그 눈에, 손을 그 손에 대므로 자기의 능력을 다 주입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영력이 빠져나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다가 자칫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위해 자기의 몸을 값있게 희생하는걸 보게 됩니다. 온 정성을 기울였더니 살아나는 아들을 보게 됩니다.
2)성경적 연결 : 엘리사의 기적은 그리스도가 행한 이적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곧 자신이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다 가지신 분이시기에 그는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막5:39-42; 눅7:13-15; 요11\"43,44) 엘리사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이적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한 바대로의 응답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행한 것과 같은 죽을 자를 살리는 동일한 이적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3)적용: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에 기적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한 교회의 말썽꾸러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아였으며 성격이 난폭했습니다. 어느날 이 아이에게 주일학교 교사가 옷 한 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소년은 이 옷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습니다. 교사는 그에게 다시 새 옷을 사주었습니다. 이번에도 몇 번 입어보더니 휙 던져 버렸습니다. 대책 없는 아이였고 버릇없는 아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교회학교교사에게 충고했습니다. \"저 아이는 구제 불능입니다. 더 이상 사랑을 쏟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교사는 소년에게 세 번째로 좋은 옷을 선물하며 속삭였습니다. \"네가 옷을 버리는 건 용서하지만 그러나 교회에 결석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다오
결국 이 말썽꾸러기 소년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목사가 되었고 중국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한 교사의 희생적 사랑이 구제불능의 아이를 훌륭한 목회자로 만들어 냈습니다.
기도했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했으니까 알아서 저절로 되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 자신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 정성을 쏟아야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쉽게 응답이 없다고 좌절하고 있으며 낙심하고 계십니까? 엘리사는 응답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고야 내려온걸 보게 됩니다. 악착같이 주님께 매달린 만큼 최선을 다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일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분명 일어날것입니다.
4.감사하는 생활(왕하4:36-37)
1)본문설명 :수넴 여인은 죽은 아이를 살렸던 엘리사에게 엎드려 절함으로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무시해 버린 것이 아니라 엘리사를 통하여 베풀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2)성경적연결 :10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며 애원했습니다. 병들었을 때는 체면도, 수치심도 모른 채 다가갑니다. 고쳐주시기만 한다면 뭐든지 다... 그러나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던 중 10명의 문둥병자가 다 나았건만 1명만 돌아와서 감사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적용: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한편 본문 33절에서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었다\'라는 표현은 죽은 아이를 산 자, 즉 잠자는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
우리는 힘들 때, 아쉬울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물론 몸이 아플 때, 사업이 휘청거릴 때 자신의 그 동안의 삶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평소에, 평탄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더 멋진 삶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