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시작과 끝/왕상11:1-13/어린이, 학생설교/2002-02-09

시작과 끝
왕상11:1-13





성경인물중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솔로몬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할 때 솔로몬과 같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솔로몬의 마지막이 너무도 실망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은 잊고 있는둣 하다. 성경은 어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실수와 실패를 기록하여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시작은 좋으나 마지막이 좋지못한 사람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의 시작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왕으로 등극한 사람이다. 그의 처음은 기도로 시작하였고 이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함으로 부귀영화를 선물로 받은 축복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지막은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그리고 결국은 버림받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신앙의 부모들은 누구나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며 솔로몬과 같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많이 있다. 그래서 자녀들을 향하여 솔로몬의 지혜를 달라고 항상 기도한다. 어쩌면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솔로몬 처럼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누렸던 영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녀들이 솔로몬의 마지막 처럼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드믈다. 솔로몬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자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지 낳았다면 그러한 부귀영화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축복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부귀 영화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면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솔로몬의 마지막을 살펴봄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받기 원한다.

솔로몬이 타락하게 되는 순간은 그의 인생의 절정기였다.
열왕기상10장에는 솔로몬의 부와 명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26절 이하에 솔로몬 왕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마시는 잔은 금잔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솔로몬의 영화를 족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열왕기서 11장에서 성경기자는 솔로몬의 타락을 기록한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이방의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하며 그의 범죄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바로의 딸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을 사랑하였다. 11장 2절에서 열왕기서 기자는 신명기 17장에 하나님의 명령을 근거로 솔로몬의 타락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17장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신명기 17장에는 이스라엘 왕이 지켜야하는 계명이 들어있다. 그 계명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거하면서 왕을 세우고 싶어할 것을 아시고 미리 왕이 지켜야하는 계명을 모세를 통하여 알리시고 있다.
사무엘상 10장 19절에서 사무엘이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종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화와 앞에 나아오라 \"고 하면서 왕을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자의 조건을 두가지로 명령하신다.
첫째 하나님이 택하신자를 세워라는 것이다.
왕을 세우되 왕은 반듯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라야 한다. 인간의 수단 방법을 통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도,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라고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어야 된다.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백성을 존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소년 사울은 잃은 당나귀를 찾다가 늦어지자 걱정하는 부모를 생각하고 또 그 지역에서의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 선지자를 존귀히 여기며 예방하다가 왕이 되었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어야 된다. 겉으로 드러난 인간적인 능력이나 외모보다는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찾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백성을 다스리되 자신의 뜻을따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둘째는 형제만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국인이어야만 된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나라로서 일찍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가 주신 율법을 준행하며 백성을 지도해 나가야 한다. 외국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타국인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보다 자기 나라의 우상숭배적인 관습대로 다스리려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웃나라의 왕이 뛰어나고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합병을 통해 왕으로 옹립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만 가능한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오직 하나님의 언약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핼할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왕이 된자가 지켜야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지말아야 할것
첫째 말을 많이 두지 말아야 한다.
말은 당시의 군사력을 상징한다. 말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왕정체제를 갖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많은 군사력에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의존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힘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나 물질이나 제도를 의지하다 보면 인간은 실패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말이 거의 사육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이 말을 애굽에서 수입하였다. 애굽에서는 좋은 말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말들을 거느리려 하면 애굽과 교역을 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왕래가 빈번해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애굽의 풍속과 우상을 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는 그 길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레18:3).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이는 이방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미혹하게 될것이라는 경고이다.
또 왕이 향락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셋째 자신을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을 명했다.
이것 역시 은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주님의 배려이다. 디모데 전서 6장17절에 \"내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놓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나안에서는 은금이 생산되지 않는다. 그들이 은금을 가지고 누리는 것은 그들이 애굽을 나올 때 하나님의 애굽백성들에게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마치 자기들 것인양 우상을 만들고 방자히 행했다. 물질을 주신분이 하나님임을 잊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다.

■ 왕이 적극적으로 해야하는 것
율법을 곁에 두고 배울 것을 명령하셨다.
왕위에 오르면 율법을 따르고 그것을 자신의 생활로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모든 부귀와 명예와 오락보다 더 좋은 것이 되어야 하며 많은 말(馬)과 아내보다 더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은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보관하고 있는 울법서의 원본을 베껴 곁에 두어야 했고 그것을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했다. 그것은 매우 수고스런 일이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왕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매일 식사를 하며 건강을 유지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영혼의 소생함을 얻어야 한다. 백성을 인도하는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눈에서 떼지 말고 마음판에 새겨야 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상의 명령을 철저하게 어겼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첫째 명령인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는 명령을 10장 26절에서 어기고 있다. 솔로몬은 말과 마병을 모으고 그것을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에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말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명령도 무시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였지만 나중에는 그가 거느리는 말과 마병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뿐만아니라 그 말과 마병을 유지하지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내게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되었다.
왕상 12장 4절에 백성들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찾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백성을 고역에 빠트리는 악한 왕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명령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도 무시했다.
솔로몬이 범죄한 사실은 특히 이방 여인들을 축첩의 대상으로 삼은 데 있다. 이는 결혼을 통한 단순한 문화적 교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절충과 혼합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계명을 여기고 이방의 많은 여인과 혼인의 관계를 맺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은 분명 국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바로의 딸과의 결혼은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애굽과 사돈지간을 맺음으로써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성공적인 처술이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단순히 국력을 증진 시키려는 외교적인 차원보다 이방 여인들을 연애하였다. 그의 쾌락을 위한 것이 더 작용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축첩은 정당화될 수 없는 분명한 죄이다.
아내를 많이 둔 자는 미혹될 수밖에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어기게 되었다.
그는 아내를 무려 1000명이나 두었고 그들을 오가며 향락에 빠졌다. 그 여인들을 위하야 산당을 지어주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허용했다. 그래서 결국은 그도 그 여인들의 권유를 받아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어떻게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셋째 명령인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는 계명까지도 잊어버렸다. 그의 마시는 잔이 모두 금잔일 정도로 개인적인 부를 누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데 쓰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어주고 죄를 짓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9절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하나님이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므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도 듣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다.
본문은 결코 하나님이 솔로몬을 떠났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않는 패역을 범했다.
그 결과로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아픔을 당하였고 이스라엘 곳곳에 산당이 세워지고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패역이 생겼다.


솔로몬의 타락이 그의 인생의 절정기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역대하 26장 15절에 웃시아왕이 강성해 지매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왕도 그의 절정기에 교만하여 졌다.
우리는 형통함과 부귀영화를 원한다. 형통함에 위험이 있어도, 그래도 나는 솔로몬과 같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는 잘못된 마음이 남아있다.
우리의 형통과 부귀영화 때문에 교만하여지고 하나님께 악을 행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려야 한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는 삶을 요구하신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부와 영예를 원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포기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솔로몬의 마지막\'을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
솔로몬의 마지막이 주는 교훈은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향하게 한다.
부귀영화는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만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킬수 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은 부귀를 구하는 마음이 아니다.
고 고 믿음을 지킬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