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들이 바로서라
청년들아 바로 서라
요일2:12-17
오늘은 청소년 주일입니다. 어느 서양의 시인은 \"젊은이를 나에게 보여다
오 나는 그 나라의 앞날을 점치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의 눈동자에 맑은
정기가 빛나고 가슴속에 뜨거운 정열이 불타고 머리는 냉철한 이성이 깃들
고얼굴은 성실의 표정이 서리고 손에는 근면의 맥박이 넘치고 발걸음에 씩
씩한 활기가 충만하다면 이런 청소년이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는 소
망이 있고미래가 환하게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추세는 청소년들
의 타락이 도를 더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월달 법무부가 발표한 최
근 5년간 소년 범죄 동향파악 자료에 의하면 강도,강도살인, 강도강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10대소년이 전체 범위의 54.3%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
년 증거하고 있다고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청소년 교육 여하에 달려 있
다고 말한 철인의말처럼 오늘의 심각성을 모두가 깨달아 바로 이끌어야 하
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야 합니다(13,14)
청소년기의 특징은 지극히 정열적이면서 지식에 대한 많은 욕구를 갖고 있
으나 매우 이성적입니다. 현대교육은 모든 것을 증명하여 답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증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으면 수용하기 힘이 듭니다. 수학이나
과학의 문제처럼 하나님도 증명하려드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유년부에서
열심히 자라던 어린이가 중.고등부,대학부,청년부에 올라갈수록 많은수가
탈락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는 것으로만 이뤄지지 않았고 증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식은 한게가 있고 미약합니
다.
솔로몬은 지식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말년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때가
가까깁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의 아버지시요 그 분은 영원부터 계신 분으로(14) 모든 지식과 지헤가 하
나님께로 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14).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므로 악한 자를 이기고(13) 흉악한 자를 이기었다(14)고 했습
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와 교회 안에서도 젊은이들이
무기력한 이유는 그들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고 세상의 지식이
가득차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
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시119:9)\"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이유는 세
상의 모든 소유물은 그것이 바로 쓸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사용하는 사람
이 바로써야 하는데 사람은 늘 변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하신 하나님의 도움
을 받는 것입니다. 현대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곳
곳에서 부정과 부패로 썩는 냄새가 나고 무너지고 터지고 있습니다. 물질이
나 권세나 재능도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완벽하게 하실 수 있
습니다. 더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분별력이 약하고 인생의 경험이 부족
하니 더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적은 이스라엘 민족은 쉐마 교육을
통하여 어려서 부터 선악을 분별하는 말씀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평생 떠나지 않도록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게해야 합니다(15).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되며 거역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본질
적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부하며 대적합니다.그래서 예수님도 철
저하게 대적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매력있게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
나 많습니까? 청소년 범죄의 80%가 술, 담배, 마약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러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15).
예수님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지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했습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집
니까?
육신의 정욕 - 본성적으로 일어나는 죄악된 욕심입니다. 육신에 대한 탐
욕, 사치,쾌락,성욕, 물욕,등 하나님을 잊게 하고 이웃을 생각지 않게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안목의 정욕 - 보는 것마다 갖고 싶고, 누리고 싶고,먹고 싶은 욕망입니
다.
이생의 자랑 -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생각하고 자기자랑, 자식
자랑, 남편자랑,등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세상의 것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7). 세상이
아무리 매혹적이요 수지맞는 것 같아도 거기에 소망을 두면 실망합니다. 세
상의 것은 새것이나 낡아지고 젊었으나 늙어지고 값이 비쌌으나 헐값이 됩
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누려보고 가져보고 인정도 받아 보았으나 세월이
지나자 영화의 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
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고 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히 거한다는 것입니다(17).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자요 영생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젊은이의 자본은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짧은 과거와 긴 미래를 가진 것
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대는 세계
를 지구촌이라고 하고 세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합니다. 젊은이의 무대는
당연히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는 경제적으로 복음적으로 한국의 지원
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진들 무슨 소용입니까? 정
신이 바로 박힌 백성들이 지도자들이 세계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세계화는
곧 복음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땅끝가지 복음을 들고 가라
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영원한 가치관에 소망을
둔다면 그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청소년들은 세계를 무대로
하되 천국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관이 올바로
서게 됩니다.
결론
오늘의 세계는 넓은 바다에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계속하여 새로운 지
식, 새로운 유행이 오고 갑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처하지 않으
면 파도에 밀려 침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자녀들을 세상에
빼앗긴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의 청소년들을 세상에 빼앗긴다면 교회는
텅텅비게 될 것이요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도 자연히 무
너집니다. 지금이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청소년들을 지킬때입니다. 이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음안에서 바로서서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이루고 나라를 짊어질 훌륭한 재목이 되길 축원합니다.
첫번 크리스마스 이브
성경 본문: 사 9:1-7, 눅 2:8-20
예수가 탄생할 즈음 팔레스타인에서는 추운 계절을 피한 3월과 11월 사
이에 양들을 들판에 내어 놓고 방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러
나 예루살렘 근방(특히 베들레헴)에서는 성전 제사에 쓸 양을 충당하기
위해 1년 내내(겨울철인 12월-2월에도) 양을 방목했다. 그래서 6세기 당
시 서방교회의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하여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잡았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들은 최초의 사람이 다름아닌 베들
레헴 들판의 양치기 목자들이었다고 전한다. 구주탄생의 소식이 목자들에
게 먼저 전해진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목자들이 매
우 천한 일을 하며 그들이 늘 양떼와 같이 있어서 서기관들이 요구하는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찮케 취급하였다. 그러한 취급을 당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비천한 목자들이 예수
의 탄생소식을 최초로 듣고 이를 증거하는 증인들이 될 수 있었을까? 오
늘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8절은 ; 목자들이 맡겨진 직분에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었음을 전한다.
당시 예수 탄생의 때는 팔레스타인의 겨울이었다. 더욱이 베들레헴은 해
발 600m의 고산지대였기 때문에 한밤중에 목자들이 양을 지키는 것은 매
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은 성전에 바쳐질 희
생양(제물)을 돌보면서 들판에서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그러한 충성과
열심이 그들을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최초로 구주 탄생의 복된 소식을
접하는 축복을 얻게 했다.
15-16절은 ; 목자들이 사명감에 불타는 자들이었음을 전한다. 목자들은
베들레헴 교외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중 천사들을 통해 구주 탄생의 실로
어마어마한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대망하던 메시야
탄생의 소식을 듣자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주탄생 장소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즉시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
이다. 성전의 희생 양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는 참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속죄양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일이 더 중
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던 것이다.
17-19절은 ; 목자들은 보고 들은 대로 충실하게 증거하는 자들이었음을
전한다. 아기 예수를 찾아간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하였다. 즉 목자들은 그들이 믿고 들은 내용을 한
치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예수의 부모들에게 전한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천사들이 목자에게 선포한 말씀과 당시의 상황은 목자들
밖에 아는 자들이 없었지만 그들이 충실하게 증거함으로써 또 다른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결국 누가복음에 묶여져 성서 말씀의 일부로 기록되
었으며, 이것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일점 일획의 더함
이 없이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들려 주고 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
씀을 선포하는 자의 올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진실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해야 한다.
20절은 ; 목자들이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자들이었음을 전한다.
목자들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최하위 계급에 속한 자들이었지만 자신의 신
분에 불평하지 않고 맡겨진 직분에 묵묵하게 충성한 결과 구주 탄생에 관
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첫번째 축복을 입었으며, 놀라운 이 소식을 널
리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아기 예수를 방문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사실로 나타난 것을 목도하는 두번째 놀라운 축복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
여 하룻밤의 짧은 시간에 말할 수 없이 놀랍고도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직접 체험한 목자들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놀라
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찬양과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목자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었
지만 그들은 인생 최고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확신과 자기들이
본 것이 한없이 전파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기쁨으로 발걸음을 내딛었
다. 실로 인생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며 하나님께서는 그
행복의 초점을 인간에게 두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까이 오시
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의 가족 어린아이를 택하셨고 베들레헴 마굿간을
찾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
다.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는 인생의 가장 큰 희망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
인간이 요구하는 영광은 자기중심의 부귀영화이지만 예수가 행한 \'하나
님께 영광\'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가난한 자들과
어린 것들에게 친근히 하시고 잔인과 부정을 미워하시며 모욕을 당해도
반항치 않으시며 원수의 사유를 구하신 영광, 곧 주린 자를 먹이시고 헐
벗은 자를 입히시며 실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시고 차별없이 사랑하시며
인간의 평화를 위해 일하시고 만민을 한 형제로 포용하신 그 영광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의 모습을 우리는 신약성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식에 고통당하는 자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신다.
그것은 참된 회개와 결심을 통하여 가능하며, 될 수 있으면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을 명하셨고 다음에 요구되는 것은 사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확
증이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크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
와 구원이 확보되었으며 참으로 회개하는 자는 사유, 고침, 평강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근심과 공포에 싸인 자에게 평화를 주신
다. 근심과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믿음이다. 생(生)이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으며, 세상은 무관심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과 능력
을 믿을 수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경에서 헤어날 수 있
다. 그러나 생의 허무, 세상의 무관심만을 주장하는 자는 살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고뇌와 공포에서 신음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믿도
록 도와주는 동시에 사랑과 성실로 남을 돕는 과정 중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줌으로써 평화를 주신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오늘 본
문에 나타난 천사들이 노래한 평화이다. 예수가 오심으로 이루어진 유대
인과 이방인의 화해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세계 평화도
우리가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만민을 위한 관심\'에 동참할 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의 탄생에 있어서 \'목자들의 경배\'가 지상의 반응이었다면 \'천사들
의 찬양\'은 곧 하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천사들은 한 입을 모아 찬양
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했다. 이 찬양
을 투해 예수탄생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던 것이다. 실로 인류 구
원을 위해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선하심은 정녕 찬양
받아야 마땅하다. 즉 하나님은 다른 일로도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지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신 사건은 특히 지극히 높은
곳에서 그 분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한편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
러한 선하심은 이 낮고 천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으며, 참 평화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
롯되었다.
이처럼 허다한 천군천사들에 의해 증거된 믿음의 외침, 즉 하나님의 선
한 의지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가
된다는 이 말은 복음 중의 복음이요, 진리중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예수의 탄생후 최초의 경배자가 바로 목자들이었다는 오늘의 본문은
예수는 영혼의 목자장(牧者長)이시라는 것과, 선한 목자되신 예수는 양
들, 곧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신 분이라는 것,
예수는 유리방황하는 자들의 생명의 길과 안내자가 되신다고 하는 영적
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시는 예수탄생의 소식을 기쁨으로
증거한 2,000년 전 목자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우리의
입술과 행위로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이 기쁜 소식은 진정 모든 인류의 영혼을 구원할 복된 소식
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
시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