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주신 뜻은?

계명을 주신 뜻은?
출19:1-6
청소년을 위한 십계명 강해설교(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1-6

한 형제가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목사님, 지금도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은 신약시대 아닙니까?\" 맞습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이고 은혜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

그러면 바울이 말한 바 \'율법의 폐지\'란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이스라엘의 율법은 세 가지, 즉 의식법, 사회법, 도덕법으로 되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의식법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소용되던 세밀한 요구 사항들을 말합니다. 이 법이야말로 완전한 희생제물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다음 주일날 비행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음 사회법은 당시 유대 사회의 유지를 위한 각종 소송과 규칙들을 말합니다. 물론 이 법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이 도덕법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신의 백성에 대한 일반적 교훈들입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는 선에 대해 전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알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연히 행할 것과 피할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위대한 통치자,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요약적으로 압축한 것이 바로 \'십계명\'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율법으로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롬3:20)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 의로운 행실은 이미 구원 얻은 사람들의 징표인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위의 본문을 배경으로 십계명이 언제,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언제?

1절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온 지 3개월 여가 되어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가나안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인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포천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울에서 수원 쪽으로 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보름 정도면 곧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곳 시내산으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저의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뭔가 긴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새 나라의 새 백성이 지킬 새로운 규례를 먼저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애굽에 있는 동안, 400여 년은 침묵하시더니 이제 홍해를 건너 자유의 몸이 된 뒤에야 주시는 겁니까?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계명은 이미 \'출애굽\' 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들이 알고 지켜야 할 그것입니다.

출애굽은 거듭남의 상징입니다. 계명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우리의 친구들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 요구받는 규례요, 하나님의 나라에 맞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십계명을 들먹이면서 그것이 무서워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 그릇됨을 풀어줘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지켜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해방 된 후에 계명이 주어졌듯이, 누구든지 십계명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 그것을 지킬 동기와 능력을 주신 이후 그 계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물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습니다.

출애굽은 했지만 아직 그들은 가나안 시민의 자격은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과 사고 속에는 노예생활 할 때의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시나이 주변의 부족들은 무질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이스라엘을 우습게 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은 한없이 유치했지만 신분은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학급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신자도 있고 불신자도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가 모든 면에서 불신자보다 낫습니까? 실력 같은 것은 차지하고. 그러면 생활 면에서는 어떻습니까? 슬프게도 저는 신자 학생들이 불신자들보다 더 무질서하고 인색하고 매력 없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물론 더 많은 경우에는 그래도 신자가 불신자보다 낫게 보인다고 저는 전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계명도 모르는 불신 친구들 중에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 예수 믿으면 다냐? 뭐 난 것이 있냐?\"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슬슬 눈치 보며 피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제 막 홍해를 건너온 유치한 수준의 이스라엘을 생각하십시오. 어쩌면 당신이 그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래, 맞아 나는 형편없어. 그러니까 예수 믿는 거야.\"

십계명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아직도 유치한 단계에 있던,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부끄러움과 자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의 수준은 어떠해야 했을까요? 결코 높은, 지키지도 불가능한 요구치를 내걸지 않았습니다.

어떤 청년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다 지켰노라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자랑합니다. \"나는 살인하지도, 간음하지도, 도적질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해석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마태복음 5:21 이하에서 우리는 진정 천국시민에게 요구되는 수준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살인하지 않았어도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한 자요, 간음치 않았어도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한 자랍니다.

십계명은 대부분 \"하지 말라\"(do not)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도 뭔가 악행을 하지 않으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우리를 끔찍이도 속박하는 종교라고 내심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명을 통해 참 자유를 주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한 친구가 \"마약을 피우든 말든 내 자유야\"라고 했다고 합시다. 어느 날 그는 마약에 사로잡혀 스스로는 자신을 어쩔 수 없음을 발견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릇된 자유, 위장된 자유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진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참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요 8:32).

예수님의 십계명 해석은 결국 마태복음 22:37 이하에서 이렇게 집약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 둘째는 이웃을 사랑할 것. 결국, 십계명을 지키는 길은 \"하지 않는\" 항목을 되뇌면서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라, 힘차게 일어나서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자였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자인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지겨운 멍에 같은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감사, 더 구체적인 감격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에게 있어서 계명은 기쁨이요 특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