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자녀인 청소년을 위해 울라! 눅23;28 가슴 아픈 시를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들어 보세요. / 하늘나라가 얼마나 멀리 있나요? / 그곳엔 강도가 없겠지요? / 고 3 시험 때 점수 뺏으려 달려든 칼든 강도는요? / 하나님 들어보세요. / 여기는 너무 답답해요. / 문학도 음악도 즐길 수 없는 고3 교실이거든요. / 서로의 자존심을 마구 짓밟는 세상 / 친구도 없고 스승도 없는 세상이 싫어요. / 오직 공부, 공부, 공부만 강요당하는 / 고3의 고통을 하나님 좀 들어보세요. / 언제쯤이면 고통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나요? / 하나님 그날을 기다리기엔 너무 힘이 들어요.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 시는 20여 년 전, 전주 모악산에서 극약을 복용한 후 자살한 한 고3생의 유고집 <꿈꿀 수 없는 세상이 싫어요>(도서출판 窓, 1991년)에 수록된 시입니다. 이 아이의 자살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의 가정은 아주 정상적이고 화목했습니다.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이고, 아버지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 아이는 기독교인이였고, 그것도 중고등부 회장을 지낸 신앙심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자살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아이가 어떻게 자살이라는 것을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아이는 고3 생활이 주는 긴장, 경쟁 속에서 잃어져 가는 인간미, 고독과 외로움으로 처절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의지박약에 책임을 돌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살인적 교육풍토 속에서 기쁨도,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살한 그 학생만의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겪는 일일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교회 청소년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를 보시면서 권면하셨던 말씀이, 생생하게 가슴을 칩니다. “예수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은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내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위하여 울라!” “가치관이 무너진 시대, 꿈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지옥과 같은 교육풍토 속에 살고 있는 자녀를 위해 울라!” 예수님이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단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울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른들은 고민하는 아이들, 즉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인생을 고민하는 아이들, 실의에 빠져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바른 대답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척박함으로 인해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에게 교회의 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1. 무엇보다도 교회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쉼터와 방향전환처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오랜 경쟁으로 인해서 상처받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시달린 마음들이 와서 위로 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야망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돌려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힘있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우리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더 이상 학교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의 인격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능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교사들의 의식, 심지어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의식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출세주의, 성적지상주의의 사고가 침투해 들어와 있습니다. 현직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성적상담을 제외한 심리상담은 일 년 가야 한 두 번 하면 고작이랍니다. 인격과 정서 지도가 불모지인 이런 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자살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내면의 상처와 비뚤어진 정서를 갖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교육제도를 바꾸어가는 것은 교회의 몫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어느 정권, 어느 시민단체에서도 할 수 없는 정신의 변화를 오직 기독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깨어나야 합니다. 교회 속에서 이제 새로이 이 나라의 잘못된 교육과 그 곳에서 신음하는 우리 아이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드리는 새로운 기도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잘못된 교육으로 신음하며 절망한 아이들이, 교회 속에서 새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새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능력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2. 청소년에 대한 기본이해를 가지고 신앙지도를 해야 합니다. 어른의 기준에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어른과 아이들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① 청소년은 과도기에 있고, ② 그들은 생의 규모가 구체화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③ 청소년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④ 그들은 이상주의자들이고, ⑤ 능력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⑥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급진적 성숙기에 있기에, ⑦ 도전적인 것에 쉽게 감흥 되며, ⑧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⑨ 자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십대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해서 불안한 십대이기에 어느 세대보다도 주님이 절실히 필요한 세대입니다. 바로 지금 주님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는 세대입니다. 막연히, 추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는 안 되는 세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만나는 경험을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십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만 이 경험을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바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십대의 문제는 어른들이 모판인 것을 안다면, 십대의 하나님 경험은 어른들이 모판이 되어야 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바짝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십대들에게 건강한 신앙의 어른으로 인정받아야겠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무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 문제 많은 교육제도와 풍토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 속에 우리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이 아직 교회를 버리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우리의 자녀를 위한 울음이 시작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