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진짜 모습을 가리는 좋은 가면이다
겉모습은 진짜 모습을 가리는 좋은 가면이다
갈6:11-18
제가 처음에 청소년주일에 청소년설교를 맡게 되었을 때 참 막막했었습니다. 사실은 김현 집사님께서 춤을 추라고 하였기에 아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 제가 말해서 그럼 상윤아 넌 설교해~ 라고 하시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설교라는 어마어마한 임무가 제게 부여 된 것 이였죠. 부리나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성경책을 열심히 뒤져가며 무언가 마음에 드는 구절, 인상 깊은 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갑자기 아무데나 펴놓고 찾으려니까 하나님의 말씀들이 와 닿지 않고 따로 놀기만 하더군요.
그러던 중 갈라디아서를 우연히 피고 읽게 되었는데 그중 마지막장의 마지막 부분이 꽤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이 할례를 강요하고 또한 그들은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 자랑하려는 것이다. 특히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는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겉모습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첫 인상에 좋은 느낌을 심어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외모에 많이 좌우 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외모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서서 우리는 이제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자기 자신의 본모습이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예로 들어보자면 양로원, 고아원 등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노인들과 어린이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정작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앞에 서 계신데도 옆 사람 눈치를 살피거나 노약자석을 살피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눈을 감아버리거나 더 심한 예로는 중학교 때 제 친구들은 봉사활동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근처 양로원에서 300원을 주면 봉사활동 1시간을 준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 봉사활동 시간을 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신문에는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 공부 할 시간도 모자란다며 대신 봉사활동을 해주는 경우까지 났습니다. 결국 진심으로 봉사활동을 한 학생이든 돈으로 산 봉사활동이든 엄마가 해준 봉사활동이든 겉으로 나타내어지는 건 모두 같은 봉사활동 점수 이죠.
아직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요즘 보고 듣는 것들에서는 이것들 에서도 본질을 왜곡하고 남자는 연봉과 능력으로 여자도 적정정도의 부와 외모가 진정한 사랑을 뛰어넘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노래 가사에서는 21세기의 여자의 인격이 왜 명품백 결혼은 이력서가 필요해 마음은 서로를 향해 걸어도 먼저 차를 봐 부모님은 뭐하셔 사는 곳은 어디셔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성격, 가치관, 그 사람과 나와의 통하는 점 같은 것들이 아닌 것들이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점은 씁쓸한 마음을 남깁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우리는 겉모습부터 들이대는 상황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혹은 습관적으로든 자기 자식의 친구를 만나 본 뒤 자식에게 그 아이는 공부 잘하니? 반에서 몇 등 정도하니? 같은 성적과 관련된 질문과 그 아이 부모님은 뭐 하시니? 같은 가정환경에 대해서 물어보곤 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열성적인 엄마들은 그 아이의 집이 몇 평 인지도 물어보곤 한답니다.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그 아이가 전교 1등을 하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변호사에 엄마는 의사이고 그 집은 타워팰리스 100평짜리 집에서 살면 그 아이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아이일까요? 이러한 잘못된 질문들이 결국 그 자기 자식들도 그렇게 수치화된 기준들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게 만들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저 또한 초등학교 때 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 계기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다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 친구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신나게 놀든 책상에 앉어 있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시험도 없었던 터라 성적을 몰랐으니 누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구요.
그러나 중학교를 와서 2학년 때 처음 반 배정을 받고 1학년 때 소문으로 전교1등 이라고 들었던 애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아는 애도 아무도 없으니 쟤랑 좀 친해져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먼저 다가갔었죠. 물론 제 특유의 친화력으로 쉽게 친한 친구가 되긴 했지만 정작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제가 도움을 받은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친구가 도서관에 가려는 저를 꼬드겨서 항상 같이 집에 가자고 하는 바람에 집에서 노는 시간이 잦아져 그 친구와 별로 안 친했을 때보다도 더 성적이 안 좋았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다시 생각해보면 단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려 했던 제 생각이 갓 중학교 2학년이 된 학생 생각으로는 매우 불건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요즘 불어 닥쳐 매우 큰 논란을 가져왔던 학력위조 사건도 결국 그 사람의 진정한 능력과 됨됨이를 보지 않고 겉에서 보기 편한 학력과 자신에게 살살 돈과 뇌물을 안기는 사람에게 기울었던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가 빚어낸 안타까운 일이 었죠.
외모 지상주의가 얼굴과 몸매 뿐 아니라 학력과 돈 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폐단 이라는 것이죠. 얼굴, 돈, 학력, 성적, 몸매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전부 입니까? 또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린 진심을 거부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조금씩 의식적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께서는 자녀들의 친구의 성적이나 부모님 직업 같은 것은 일체 묻지 않고 단지 나쁘게 엇나가는 친구만 아니라면 좋은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날아다니는 청소년이 아닌 이상 성적이 낮든 높든 간에 각자의 특성과 장점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가 정말 우정이 돈독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청소년들도 자신이 봉사활동을 허위로 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정말 짜증과 불평 속에서 마지못해 한 봉사활동을 점수로 받고 점수 다 채웠다며 좋아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학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상도 험악하고 성격도 무뚝뚝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던 사람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면 갑자기 그 사람 인상이 좋아지고 성격 좋고 항상 미소를 띠던 사람이 전문대를 나왔다고 하면 그 사람을 경시 하는 태도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가장 진실한 마음을 보시고 그 사람을 대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한 번에 빠르게 알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처럼 그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그 사람다운 모습을 알아 가려고 노력한 뒤에 그 사람을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처럼 나중에 가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마다의 장점만을 보며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승무 집사(청소년부 부장)
김 상윤 청소년이 전한 설교 내용은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살 때가 많은 그런 종류의 것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질타했고 유교경전의 공자님 말씀도 다 그런 종류인 것 같습니다. 겉모양에 치중하지 말라. 이것은 우리 한국의 전통문화의 핵심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그런 진실 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청소년들의 입장을 수용하고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체면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잘 하지는 못해도 기본은 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것인데 주로 결혼식이나 어린 아기 또는 노부모의 생일잔치, 장례식 같은 경조사에서 주로 그런 사고방식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좋은 말로 예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사를 할 줄 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체면치레나 예의 같은 것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그것이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원만하게 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김상윤 청소년이 이야기한 대로 우리 기성세대는 성공과 사회적 안정을 중요시하고 그런 그룹에 들어가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성적, 키, 집 면적, 월급액수와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것을 무척 중요시합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차별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청소년들이 보기에 얼마나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겠습니까?
기성세대들은 여기서도 웬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성적도 기본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80점 이상, 집 평수도 최소한 얼마 이상, 키도 얼마 이상 이런 식으로 남들을 크게 앞지르지는 못하더라도 반대로 크게 뒤쳐지는 것을 아주 안 좋게 생각합니다. 친구를 사귀어도 특출한 인재를 친구로 삼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기본 조건은 되는 친구를 사귀어라. 한 마디로 개성이 없고 손가락질 받기 싫어하고 멋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평가를 받아도 싸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청소년들이 그런 기성세대를 못 받지 말고 정말 멋있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합니다.
기성세대들이 겉치레에 치중하고 성적을 중요시하고 모이면 주식 이야기나 부동산 이야기만 할 정도로 돈을 중요시하는 것, 그런 방면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첫째는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둘째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 곧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라디아서 6: 12, 13) 이 두 번째 자랑하고 싶은 동기는 정치적인 것이고 투명하지 못한 것에 속합니다. 보다 직접적인 동기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일단은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고 또 자녀들도 앞으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야 누구나 당연히 바라는 것이고 그런 문제야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던 문제인데 그것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청소년 시절에 우리 부모 세대에게 똑같이 항변했습니다. 그러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희들은 배고픈 것이 뭔지 모른다. 그러시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쫄쫄 굶던 경험담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지금 저와 비슷한 기성세대는 그런 것은 경험을 못 해 보았고 \"너희들은 IMF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논쟁을 하는 데 나이에서 오는 실제 경험보다 무서운 무기는 없으니까요.
이런 주제로 기성세대와 청소년, 부모와 자녀 간에 논쟁은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입니다. 양쪽 편의 말이 다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기성세대도 또 우리 청소년도 이 논쟁에서 굳이 이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겉모습이 아닌 진실된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우리 청소년의 생각이 청소년 시절에나 할 수 있는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시대에 적절한 발언이라는 것이 실감이 될 시대가 닥칠 것이다 하고 저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어느 모로 보나 21세기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우리 기성세대들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20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에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고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20세기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여기 앉아 있는 교우들에게 있어서는 1950년부터 1999년까지 20세기 후반기가 우리의 몸이 성장하고 정신이 성숙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인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가장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0세기 중에 全세계적으로 인구는 4배가 증가했고 경제는 20배가 성장했고 에너지 사용량은 16배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2005년 시점에서 과거 20년 동안만 보아도 세계인구는 35% 증가, 세계 경제생산량은 75%, 에너지 사용량은 40%, 육류소비량은 70%, 자동차 생산량은 45%, 종이사용량은 90%, 광고는 100%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기성세대와 청소년 세대간의 물질적 풍요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몇 십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시대에는 부모세대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부모세대보다 공부할 시간과 여건이 안 되어 공부를 더 적게 하는 것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당연히 공부도 더 잘해야 하고 집도 더 큰 집에서 살아야 하고 학교도 더 오래 다녀야 하고 뭐든지 부모세대보다는 나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조금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겉모습에 관한 한 그 성장 속도는 가공할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런 시대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대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계속 20세기 후반기처럼 성장을 했다가는 지구환경이 지금도 안 좋지만 완전히 망가져서 사람이 살기도 힘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제는 생산이나 소비를 조금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물질적 성장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 이전 시대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사회는 분명히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과거처럼 숫자로 표현되는 겉모양을 중요시한다면 불행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옛날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기가 그렇게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여기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지금과 같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도 매우 불투명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악착같이 공부를 잘 하고 재주를 배우고 기술을 익혀서라도 우리 아이만큼은 그리고 나만큼은 잘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 하고 결의를 다지는 분도 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그런데 가치를 두었다가는 사회적으로 불행이 찾아오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청소년의 부모 되시는 분들이나 청소년들이나 \"그런 겉모양에 해당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초연하게 생각하고 좀더 진실된 내면을 가꾸는 데 충실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외모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 사회풍조가 걱정스럽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정도 겉모습은 사실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인간을 외부적으로 규정하는 숫자들에 치중하는 것이 비하면 큰 문제는 아닙니다.
외모를 가꿀 수 있으면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얼짱도 나오고 몸짱도 나오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지금 점잖게 앉아 계시지만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멋을 부리더라도 자기 개성을 살려야지 남을 모방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멋있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정신과 마음씨가 받쳐주어야 합니다. 삶에 초점이 있어야 눈동자가 빛이 납니다. 마음이 넓고 너그러워야 얼굴이 밝고 아름답습니다. 물론 그것이 일대일 대응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에 숨어 있는 진짜 모습입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볼품없고 초라하고 추한 내면을 감추려고 자녀들에게 겉모습만을 강조하지 않았나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청소년들은 그런 기성세대들을 본받지 말고 내면이 훌륭해서 외모도 빛이 나는 그런 분들이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함께 묵상기도 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