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적기도-정원 >책 중에서
1. 아주 중요한 오류들
악한 마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은밀하게 개입하여 많은 고통과 재난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파괴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귀가 존재하는 한 우리가 살아있는 한 그들의 유혹과 공격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풍요함을 가져가 버립니다.
물질을 빼앗아가고 건강을 빼앗아가며 시간을 빼앗아가고 삶의 환희와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그들은 강도이며 도둑입니다.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했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관계에 쐐기를 박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쐐기를 박습니다.
그들은 분노와 미움과 원망과 불평을 심습니다.
그들을 처리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결코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접근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대처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대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니, 알더라도 그들의 인식은 아주 피상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귀는 대부분의 고통과 재난의 배후 조종자입니다.
욥기를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삶의 모든 부분이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풍요로움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고 경외하며 자만하지 않고 조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생일이 되어 잔치를 벌인 후에는 꼭 잊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너무 풍요하고 행복한 삶이 영적인 느슨함을 가져오지 않을까,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품거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만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 잘되어 가는 상황에서 겸손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의 행복한 가정에 갑자기 온갖 재난이 닥친 이유를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의 행복과 신앙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이러한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지만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욥과 친구들은 ‘네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이 온 것 아니냐’
‘맹세코 나는 잘못한 것 없다’
‘네가 인간인데 잘못한 것이 왜 없느냐, 뭔가 죄를 지었겠지..’
‘그러지 마라. 나는 정말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싸움을 벌이고 나중에는 감정까지 상해서 서로 인신공격을 해대지만 그 재난의 시작이 된 악한 영의 존재에 대한 대화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즉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깨뜨리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오셔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사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 구약에는 그러한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곧 신약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때 그 놀라운 특징은 마귀의 세력을 분별하고 대적하여 깨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과 같은 구약의 사람들은 오직 모든 것에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지 직접 주의 이름과 권세를 사용하여 마귀를 결박하고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의 시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비탄 시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하지만 직접 마귀를 부수지는 않습니다.
그도 아직 신약 이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의 죄 값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제어할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며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힘이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호소하고 울부짖고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귀를 대적할 줄 모릅니다.
아니 마귀가 어떻게 장난을 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고통과 재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행위자가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이것이 바른 행위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내게 물었습니다.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시나요? 하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갔다가 언제 올 것인지, 알고 싶으면 저에게 물어보십시오.
하지만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 싶으시면 주님께 물어보십시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당사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묻거나 책임을 돌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 우리의 돈을 가져갔다고 합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돈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찾아가서 하소연할 수 있습니다.
항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왜 가져갔느냐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엉뚱한 사람에게 가서 울면서 하소연하거나 항의를 하면 그는 대답할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돈을 말하는 겁니까? 왜 엉뚱한 사람에게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아프게 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왜 한강에서 뺨을 맞고 종로에 가서 하소연을 합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우리의 삶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구약시대에는 마귀와 귀신의 존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셔서 마귀를 드러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이 사역을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며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일을 해야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당사자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향과 싸움의 방향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화살은 과녁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마귀를 제압하지 않고 하나님께 울고 하소연만 하는 것은 문제의 당사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첫 번째 오류입니다.
두 번째 오류는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이름과 능력을 사용하는 권세를 주셨으며 그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 권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며 오류입니다.
온 우주 안에서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존재는 주님 한 분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마귀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권세를 사용하신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파괴하셨습니다.
마귀는 죄 때문에 인간 위에 군림하고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십가가의 사역을 믿으므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더 이상 마귀의 지배 하에서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나아가서 주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제어하고 깨뜨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10:1)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10:19)
이 말씀들을 보고 ‘에이, 그거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잖아’ 한다면 그것은 곤란합니다. 성경 말씀이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고, 이 것은 저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고.. 한다면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당사자는 바로 우리입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마가복음은 좀 더 직접적으로 말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7)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그게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그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약 시대의 특성입니다.
우리는 이미 권세를 받았으며 그 권세를 가지고 마귀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재앙과 재난의 배후에 있는 마귀를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이 더러운 마귀야, 악령아! 내가 너를 주의 이름으로 대적한다.
너를 결박한다! 이렇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귀신을 쫓아 주세요.’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보 같은 기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도록 주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 주님.. 이 시간에 역사하는 마귀가 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게 해 주시옵시고..” 그것은 정말 애매한 기도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것인지 내가 마귀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그것은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야! 나가라!
그렇게 강력하게 꾸짖고 외치는 것이 대적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마귀가 했는데 주님께 하소연하고 우는 것은 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명령하고 제어할 권세를 주셨는데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울고 불면서 한탄을 하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아무리 오래 해보았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어머니들이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울고 하소연하는 것을 압니다.
내 자식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제발, 제발.. 간절히. 간절히..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비통하게 울면서 몸부림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압니다. 옆에서는 귀신들이 그녀들의 목을 짓밟고 가슴을 걷어차고 조롱하고 있는데 오직 비통한 모습으로 울부짖을 뿐입니다.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옆에서 강아지가 한 마리 당신을 귀찮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조그만 강아지가 당신을 물고 짖어대고 할퀴고 한다면 그저 울면서 ‘오.. 주님.. 왜 이렇게 저에게 심하게 하시는 건가요.. 오. 주님. 언제까지 훈련을 받아야 하나요. 주님..’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하시기를 권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 이 놈의 강아지 같으니라고!’ 하면서 발로 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강아지는 깨갱거리며 도망가버리게 될 것입니다.
옆에서 모기가 앵앵거리며 귀찮게 여기를 물고 저기를 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 온갖 찢어지는 청승 어린 목소리로 울면서 ‘오, 주님.. 너무나 가려워요.. 오.. 주님. 가려워서 죽을 것만 같아요.
인생이란 왜 이렇게 괴로운 건가요.. 주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 제발.. 흑흑..’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짓입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보신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에프 킬라를 갖고 치익~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즉시로 모기는 죽어버립니다.
이것이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마귀에게 속고 눌려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해도 청승맞은 기도를 하면서 울고 기도할수록 점점 더 눌리고 비참해집니다.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발견하십시오. 그 마귀를 결박하고 깨뜨리고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그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마귀에게 하소연하지 마십시오. 제발 나가달라고 빌지 마십시오. 호통치고 야단을 치고 혼을 내십시오. 당신은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고 은총이고 복음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백 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보화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권세를 사용해볼 때 당신은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상은 4부 1장의 이야기입니다. 직접 적용을 해보시면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능력과 권세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대적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악한 영의 이름을 부르며 (귀신아! 하는 식으로) 주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됩니다.
나가라고 해도 되고 내가 너를 결박한다.
이런 식으로 선포해도 되지요.
입으로 소리내서 해도 되지만 속으로 해도 됩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는 때는 수 없이 많지만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마음에 외로움이 들어올 때 - 대체로 이것은 귀신들의 장난입니다. 대적하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2. 두려움이 들어올 때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불안감은 마귀에게서 옵니다.
3. 분노가 치밀 때 - 대적하면 놀랄 정도로 분노가 사라지지요.
4. 슬픔이 올라올 때 - 슬픔에 빠지지 말고 그 기운을 대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맑아집니다.
5. 죽어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 이간질하는 마귀가 장난치고 있는 것입니다.
6. 무기력감이 올 때 - 귀신들의 단골 메뉴지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 귀신들은 이 작전으로 멀쩡한 사람을 수 없이 잡습니다.
7. 갑자기 아플 때 - 모든 질병은 아니지만 수많은 질병이 귀신들로부터 오지요.
그럴 때 대적하면 온 몸에 전율이 오면서 몸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8. 어떤 사람을 생각만 해도 상처가 되거나 고통이 되는 사람 - 나쁜 영계의 끈이 연결되어서 그렇지요.
결박하면서 그 끈을 끊는다고 선포하면 그 줄이 끊어지므로 나쁜 기운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합니다.
9. 괜히 우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 - 역시 악한 영들의 장난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적하면 그 안에서 움직이는 영들이 박살나기 때문에 상대방이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며 우리를 슬슬 피하게 됩니다.
10. 과거의 기억에 대한 고통 - 그 때 들어온 악한 영이 아직껏 살고 있는 것이지요.
대적하면 사라집니다. 과거의 슬픈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게 되지요.
11. 배우자가 폭력적이거나 바람을 피거나.. 할 때 - 대적하면 잠잠해집니다. 다 마귀의 장난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12. 아이들이 반항하거나 거칠어질 때.. 지나치게 컴에 빠지거나 할 때 - 당연히 귀신 장난이지요. 결박하면 해결됩니다.
13. 이상하게 내 자식이라도 꼴 보기 싫은 자식이 있다 - 이것은 내 눈에 악한 영이 씌운 것입니다.
대적하면 토하고. 머슥거리는 것이 나가고.. 그리고 그 아이가 이뻐 보이게 되지요.
14. 삶의 의욕이 없어질 때 - 대적하면 새 힘이 생깁니다. 마귀가 우리를 묶고 있는 것이니까요.
15. 해야할 일이 싫어질 때 - 이것도 귀신들의 기본 사역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싫어지게 하고 논문쓰려고 하면 못쓰게 하고 어떤 의무든지 하여간 못하게 방해합니다. 사랑의 고백도 못하게 어색하게 만들지요. 그런데 대적하면 사라지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잠시 도망갑니다. 그러니 이것은 계속 묶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고 싶은 소원이 마구 생기지요.
16. 갑자기 몸이 무기력하고 힘이 빠지거나 통증이 올 때 - 이것도 악한 영들이 자주 하는 짓입니다.
이럴 때 몸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결박하고 대적하게 되면 곧 회복됩니다.
17. 만성병에 대해서도 - 암병이나 당뇨, 고혈압, 편 두통 등.. 이런 병의 배후에는 악한 영이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병은 하나의 생명이며 그 생명은 악한 자들이 부어주는 것이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듯이 대적하고 꾸짖으며 병을 저주하고 미워하면 빨리 회복됩니다.
18. 새로운 곳에 가서 잠을 자야하는데 무섭고 섬칫한 느낌이 들 때 - 악한 영들의 장난입니다.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대적하면 곧 없어집니다. 대적기도는 공간을 정화합니다.
19. 복음이나 교회 이야기 비슷한 것만 나오면 열받고 흥분하는 사람 - 악한 영의 증상입니다.
조용히 속으로 결박하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20. 갑자기 고독해지고 온 세상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고독한 영들의 장난입니다.
받아들이지 말고 대적하며 나는 고독하지 않고 주님이 같이 계시며 너나 많이 고독하라고 대적하면 없어집니다.
21. 억울한 생각이 들 때 - 억울한 영의 공격입니다.
큰 소리로 나는 억울하지 않으며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이라고 외치면 사라집니다.
22. 죄책감이 들 때 - 정죄하는 영의 공격입니다.
주님은 나를 용서하셨으며 그 피로 나를 덮으셨다고 크게 외치면 순식간에 도망갑니다.
23. 싫어하면서도 하게 되는 악한 습관 - 바로가 이스라엘을 부리듯이 노예처럼 부리는 것입니다.
역시 대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일시적으로 그것이 싫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오래된 것은 지속적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24. 더럽거나 악한 공상들 - 역시 마귀의 짓입니다.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대적하십시오. 정결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혼이 새로워집니다.
25. 경제적인 심각한 어려움들 - 특별하게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물질적인 부분으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 물질적인 막힘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악한 영들의 장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경제적인 손실이 생기고 어려움이 있다면 악한 영들이 공격하는 경우가 많지요. 황충이 우리의 소산을 먹는 것입니다.
이 때 대적하면 그러한 어려움들이 풀리게 됩니다.
26. 지나친 식욕, 지나친 그리움, 지나친 짝사랑, 사람에 대한 지배욕이나 의존심.. 그러한 것들의 배후에도 대부분 악한 영들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거의 무한대로 마귀들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씩 발견하고 쫓아내면 그만큼 새로운 영역과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요령만 알면 간단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초토화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주변, 맡겨진 이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영들을 청소합니다.
그 다음에 이런 승리의 경험을 통해서 점점 더 믿음과 영력이 배가되면 지역의 영들을 묶고 예를 들어서 영호남의 감정 싸움. 일본이나 중국을 싫어하는 것.. 그런 것들이 다 지역에 역사하는 마귀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결박하고 나중에는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악령을 결박할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서로 이간질시켜서 전쟁일으키고.. 하는 것이 다 마귀가 하는 짓이거든요.
하지만 처음에는 일단 자신의 삶에서 고통스러운 부분을 통해서 장난하는 악한 영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