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대상17:25-27 오늘은 역대상 17장 25절에서 27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은혜를 감사합시다\'라는 말과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라고 하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뒤돌아 서서 불평만 하다가 추수 감사절에 헌금 주머니를 돌리면 할 수 없이 헌금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 자체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감사가 바로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이 안되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추수감사절의 직접적인 유래는 청교도들의 감사예배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을 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농사지어 추수할 때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 중에는 굶어 죽은 가족도 있었고 병들어 죽은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추수를 해 놓았고 농사에 도움을 주었던 인디언들까지 초청을 해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감사절의 직접적인 유래가 됩니다. 그네들은 첫째로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둘째는 내 가족이 굶어 죽었다고 하면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습니까? 원망할 조건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풍년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원망할 조건과 감사할 조건이 있는 중에서도 감사할 조건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웃 인디언들과 더불어 감사했습니다. 이 정신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다윗은 무엇을 감사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기도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5-)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을 합니다. 유다는 바벨론 대군을 감당할 수 없어서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성전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불 타 버리고 죽는 사람은 죽고, 포로로 잡혀갈 사람은 포로로 잡혀가고 얼마의 농사를 짓는 사람만 남겨졌습니다. 결국 그 땅을 전부 관리할 수 없어 땅이 황폐해집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와서 바벨론에서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유다 포로들에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초토화된 가나안 땅을 에덴동산처럼 회복시켜 주겠다고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언젠가 때가 되면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36장 35절에서 37절을 보면 그 중에서도 37절에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의 약속을 기도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귀한 복을 약속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자체가 그만큼 귀하다는 뜻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5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인지 모릅니다. 본문을 거슬러 올라가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으려고 온갖 것을 다 준비하고 하나님의 허락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너는 평생에 전쟁을 너무 많이 해서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너는 성전을 짓지 말고 내가 네 아들로 왕을 삼고 그 위를 아주 견고하게 하고 영원히 그 위를 지키게 하고 그 아들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솔로몬이라는 아들에게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자손손 이어 가면서 다윗 왕조를 세워주겠다는 뜻입니다. 엄청난 복이 아닙니까?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그 축복의 약속을 듣고서 나는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없는 기도를 어떻게 합니까? 기도할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새벽기도를 하겠습니까? 기도할 마음이 없는데 나오라고 한들 철야기도에 나오겠습니까? 절대로 못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마음이 생겼고 실제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는 그 기도 자체가 큰 복이요,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무엇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 되시는 분들은 아내가 새벽에도 늦잠을 자고 밤에도 잠만 자고 있거들랑 나가서 기도하라고 야단 쳐서 좀 내보내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전 신문에 \'목숨을 살린 휴대전화\'이라는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난주일(14일)날에 되어진 사건입니다. 경남 창원에서 문경진 이라는 사람이 식품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식품 대리점을 하려면 사람 몇이 들어가서 물건을 정리하고 물건을 쌓아 놓을 수 있는 대형 냉장고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날 12시 45분에 냉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는 시간인데 교회에 나가서 예배 할 일이지 왜 냉장고 속에 들어갑니까? 그 전에는 냉장고가 닫히면 안에서도 얼마든지 열 수 있었는데 그 날 따라 냉장고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소리치고 걷어차고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밖에서 그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냉장고 안에 들어갈 때 옷을 두텁게 입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갔습니다. 20분이 지나니까 입이 얼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죽는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마침 휴대폰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경찰이 전화를 받았는데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지라 \"거기가 어디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말을 못하고 전화가 끊어지곤 했습니다. 그러기를 네번을 거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당신이 살려 달라고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개미 소리만한 목소리로 어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경찰이 식품대리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곳에 도착해 보니 사람이 죽을 곳이 없었습니다. 장난 전화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자 하고 돌아 가다가 순경 하나가 \"아무래도 냉장고가 의심스럽다\"라는 생각에서 다시 돌아가 냉장고를 열어 보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더니 사람이 있는데 동태가 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살아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 분이 살아난 것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휴대폰이 없었다면 도저히 살 길이 없습니다. 휴대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밖에 있는 나를 도와줄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구조를 요청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도와주실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기도 자체가 그렇게 복이요, 은혜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6-) 마태복음 7장 11절을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일지라도 알을 먹고 싶다 알을 달라, 생선을 먹고 싶다 생선을 달라 하는 아들의 요청 보다 좋은 것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씀은 같은 내용인데 마지막에 가서 마태복음의 좋은 것 대신에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으로 바꾸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기도할 때 보이는 것은 알 밖에 없고, 원하는 것은 생선 밖에 없어서 그것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복 일뿐 진짜 좋은 것을 주겠다하고 주시는데 받고 보니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내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왜 아들이 되고 딸이 됩니까?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받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앞뒷집에서 50년을 함께 산다고 해도 절대로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하여 되는 것입니까? 교회에 왔다가 간다고 해서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아야 됩니다. 그 생명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지 않습니까? 이 성령을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있습니까? 세상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성령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 큰복이요,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6절을 보면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것이란 다윗 왕조 건설을 의미합니다. 다윗 왕보다 먼저 왕 되었던 사울은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지 못하고 끝이 나고 맙니다. 왕조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아들, 네 손자에게, 자자손손 이어가면서 왕조를 세워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왕조를 세워 주시는 그 복이 선임 왕 사울 보다는 엄청나게 큰복이지만 그것이 영원한 복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아들 솔로몬은 40년 왕 노릇을 하고 죽습니다. 또한 다윗의 왕통이 400년을 이어가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으면서 왕통이 끊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원한 복이요, 영원히 네 위를 견고케 하리라는 말씀이겠습니까?(대상 17:12, 14) 그것은 다윗의 자손 중에 메시아를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그 메시아가 오셔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는 날 그 왕국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라는 말씀은 메시아 허락을 의미합니다. 사실 메시아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사 영원한 왕국이 건설됩니다.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족보 중에 예수가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십니까?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승천해 가신 후에 우리들에게 자기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나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내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딸이 되고, 우리의 자녀들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한 하늘의 권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은혜입니다. 이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너보다 돈 몇 푼을 더 벌었다면 이것도 감사할 일이지만은 그 보다도 영원한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는 영적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은 어느 도시에서 무디 선생을 초청을 하여 도시 복음화를 위해서 큰 집회를 열기로 하고 목사님들이 모였습니다. 그것을 좋게 생각해서 추진하는 목사님도 있고, 반대하는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그 때 무디를 반대하는 목사님 한 분이 \"이것 보십시오. 무디가 성령을 독점했습니까? 우리는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똑같은데 왜 구태여 무디 선생을 초청한다고 하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무디를 좋게 생각하는 분이 \"우리 누구도 성령을 독점해서 나 혼자만 그 성령을 다 받았다 너희들을 받을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무디를 독점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독점하면 우리는 성령의 도구가 되어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성령의 은혜가 진정으로 감사할 은혜입니다. 셋째, 누림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웨슬레는 3가지 복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셔서 받는 받음의 복입니다. 요한복음 3장 27절을 보면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세례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얼마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선생님!\" \"왜?\" \"그 전에 선생님께서 세례를 준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갑니다\"라고 할 때 세례요한이 한 말이 조금 전에 읽어 드린 요한복음 3장 2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늘이 주지 않으면 누구도 받을 수 없고 하늘이 주시면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니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출발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고 출발하는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천양지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모아 쌓는 모음의 복을 말합니다. 모아 쌓는 복이 없으면 앞에서는 굉장히 벌어들인 것 같아도 돌아서서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보다 허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 번째로는 받는 복에 모아 쌓는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을 수 있고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아 쌓고 죽으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죽으면 남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세 번째로는 누림의 복을 말합니다. 누릴 때까지가 진짜 복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창고를 늘리고 모아 쌓았습니까? 그러나 그 날 밤에 죽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 농부에게는 누림의 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영원히 누리는 다윗의 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7절을 보면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왕통에 관한 이야기로만 끝이 난다면 그것은 영원한 복이 아닙니다. 메시아가 그 족보에서 나시고 천하만민을 구원하시고 만왕의 왕이 되사 영원한 왕국을 세우십니다. 본문은 그런 엄청난 신령한 복까지를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 영원한 복은 하늘의 복을 의미합니다. 이 땅 위에 복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은 복을 쌓아 놓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후에 하늘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영생의 복락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기도 자체가 큰 은혜라고 하는 것을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좋지만 그 보다도 기도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앞으로 기도 많이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성령의 은혜를 감사하는 다윗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알이나 생선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주시는데 성령으로 바꾸어서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다 준다고 하더라도 아들 딸 되는 이 은혜를 저버리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혜입니다. 셋째는 누림의 은혜를 감사하는 다윗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으로 끝난다면 그것이 영원한 누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리는 누림의 은혜가 가장 귀합니다.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