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의 행동 대상15:24-29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우상화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빼앗아간 블레셋에도 재앙이 오자 그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벳세메스로 돌려보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다윗은 왕이 되자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웃사를 시켜 모셔 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웃사가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셔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 달을 있었습니다. 그후 다윗은 두 번째의 시도로 드디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다윗과 온 백성은 기뻐 뛰며 언약궤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그때의 모습을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언약궤를 모셔 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강림하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동행의 은혜를 입는 성도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우리모두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처럼 살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토록 누리고 큰 축복으로 이루어 가시는 무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살겠습니까? 1. 주신 사명을 즐겁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매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대상15:25) 전에 웃사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 올 때에는 하나님이 그를 치시므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웃사가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길을 언약궤를 지고 가는 수고가 짜증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웃사는 언약궤를 하나님의 법대로 운반하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들처럼 수레에 실어서 편하게 운반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언약궤 운반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깨달은 다윗과 제사장들은 이번에는 언약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 어깨에 메어 운반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들은 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너무도 감사하였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먼길을 걸어 올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릴수 있는 축복의 열쇠입니다. 이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신 사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혜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싸움하는 일에, 남을 비방하는 일에, 개인적인 욕심의 일에 쓰며 하나님의 사명을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하는 주의 자녀들의 사명을 상실한 결과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학비가 모자라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에 보탬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시간이 모자라는 환경 속에 미국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밤늦게 공부하고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신문을 배달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회의가 오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니 자신은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신문배달 같은 일이라도 있어서 내 학비 조달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왕 할 일 기쁨으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니 지혜가 떠 올랐습니다. 신문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서 함께 배달하면 학비도 조달되고 전도도 하고 내 공부도 하고 목사의 사명도 잃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즐거움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매일 귀한 성경 구절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넣어서 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신문 구독자들은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손으로 써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오늘은 무슨 말씀을 전해질까 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자리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은 주지사까지 알게 되어서 장학금을 받게 되고 미국 신문에 까지 보도가 되었습니다.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하다 보니 더 큰 축복과 은혜와 기쁨을 누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 크게 누리시기를 바라십니까? 주신 은혜, 주신 사명을 즐거움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잃지 않을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큰 것으로 채워질 줄로 믿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시는 무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헌신과 찬양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해야 할 두 번째의 행동은 헌신과 찬양입니다. 1) 다윗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언약궤를 모셔오기를 허락하자 곧바로 정성을 다하여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도다\"(대상15:26) 구약의 제사에 짐승을 잡아 드리는 것은 바로 헌신을 상징합니다. 내 몸을 드리는 상징으로 값있는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헌신의 제사와 제물을 받으시고 만족하셔서 저들의 받은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시고 갑절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드렸습니다. 한번은 그가 이것을 잊고 새를 드릴 때에 소홀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응답대신에 솔개가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근 10 여년동안 아브라함을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때의 실패를 교훈삼아 그후로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제사를 드리고 헌신하여 나중에는 아들 이삭까지 드렸습니다. 백세에 낳은 아들을 드린 것은 자신을 드린 것보다 더 귀중한 헌신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구에게 베푸신 은혜를 거두지 아니하시고 더 축복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의 제물은 단지 짐승만을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을 길어 부어 제물에 믿음까지 더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물은 3년 동안의 기근 속에 얻은 물이고 또한 산 정상으로 가지고 왔으니 참으로 땀흘린 수고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과 그 믿음과 그 헌신을 보시고 모든 이들이 보도록 불로 제물을 열납하시고 제단과 물과 제물을 혀로 핥은 것 같이 응답하여 우상 숭배자들에게 대하여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2)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매어 올렸도다\"(대상15:28)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찬양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나와야 합니다. 내가 찬양이 힘들고 어려워지면 나는 은혜 받은 자가 아닐수도 있고 혹은 받았더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과 제사장들과 온 백성들은 언약궤를 모셔오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 지자 모두 함께 찬양하였습니다. 있는 악기를 다 동원하여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죄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얻었고 고난을 당할 때 오묘한 손길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찬양할 입으로 비방하여 하나님의 은혜는 상실하고 싸움할 입으로 화해하고 비방할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하는 성도는 성도의 기초를 가진 자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 승리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양하다가 지진으로 수갑과 착고가 풀어지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고 여호사밧이 찬양으로 적군을 퇴치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말 탄 자를 바다에 빠트리신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드보라는 여자의 몸으로 적군을 이긴 전쟁의 승리를 찬양으로 승화하였습니다. 새들 중에는 독수리나 타조 같은 크고 강한 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새나 카나리아처럼 갸날프고 약한 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힘이 강하고 큰 새들인 타조나 독수리는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반면에 약하고 작은 새들인 참새나 카나리아나 잉꼬 같은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작고 힘이 없으며 어떻게 보면 겸손한 새들이 노래할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힘이 없고 겸손한 성도들만이 찬양을 부를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한없이 자기 자신이 약하게 느껴질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지키시기를 바라십니까? 더 큰 축복과 은혜로 하나님이 채워주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드리셔서 받은 은혜를 지키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는 무성교회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받은 은혜를 값있게 여겨야 합니다. 다윗에게 미갈 이라는 조강지처가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딸인데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정략적으로 사울 왕이 다윗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결혼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100명의 양피를 가져 오라 하였고 다윗이 이것을 행하자 사위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기가 나날이 사울의 자리를 위협하자 사울은 사위 다윗을 죽일려고 하였습니다. 할수없이 다윗은 도망하여 수년간 방랑자 도망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청상과부가 된 미갈을 보고 사울은 그녀를 발디라는 사람에게 재혼을 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사울의 가문은 몰락하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일 먼저 조강지처인 미갈을 찾아서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지조를 지키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강압이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그녀를 맞아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미갈은 이 다윗의 너그러움과 용서에 감사하고 조강지처로 맞아 왕비의 자리를 허락한 다윗에게 감사하고 그 자리를 귀중하게 여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갈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그 귀한 남편 다윗을 업신여기고 무시했으며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인 신앙도 함께 업신여겼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대상15:29) 남편을 업신여기는 것만으로도 용서 받을수 없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영접하는 다윗의 믿음과 즐거움과 열심까지도 업신여기게 되었으니 결국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왕후가 되는 은혜를 얻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므로 인하여 그녀는 이 은혜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삼하6:23) 그러므로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이 주신 축복,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값있게 여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열두명의 제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주님이 자신들을 부르셔서 맡기신 귀한 사명을 값있게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는 멀리 에디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 칼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생명이 끝났는데도 창에 찔리고 죽은 시체로 거리에 끌려 다니기 까지 주신 사명을 귀히 여기고 헌신하였습니다. 요한은 끓는 가마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밧모 섬으로 귀양가서 거기서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며 받은 사명을 존귀히 여겼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목베임을 당하였고 또 다른 야고보는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바돌로메는 산채로 찢겨서 순교했고 도마는 인도에서 선교하다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몴으로 사도가 된 맛디아는 돌에 맞아 죽었고 죽은 후에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감수라며 충성할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 보다 의지가 강하고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자신들같이 부족한 자를 택하여 맡기신 사명의 가치를 알았기에 이 길을 걸어갈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사명을 팽개치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구원받은 은혜, 받은 사명을 헌신짝보다도 값없게 여기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직원의 책임과 의무는 행하지 않으며 대접받는 자리에만 들어가려고 애쓰지는 않았습니까? 이런 모든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업신여기는 일이며 구원받은 축복과 맡겨진 사명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미갈처럼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나의 삶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고 더 크게 받으셔야 할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믿게 된 것, 무성교회 성도가 된 것, 또 귀한 사명을 가치있게 여기셔서 누리고 더 크게 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고 참되게 보존하시는 무성교회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