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라 왕하5:9-14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오늘 본문에는 나아만이란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절 말씀에 이 사람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1절)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람 나라는 당시 요단강 북부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브라데스강까지 이르는 비교적 넓은 지역의 나라였고 이 나라의 언어(아람어)는 고대 근동 지역의 공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나아만은 이런 나라의 국방과 안보를 책임맡은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주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여기 \"주\"라는 말은 아람 나라의 왕을 말합니다. 나아만은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인 왕의 신임과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권력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아만은 지난날 아람 나라의 국운이 위태로웠을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던 구국 공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아만을 \"큰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1절에서 소개하는 나아만의 신상명세서는 그의 화려한 이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나아만의 화려한 인생의 이력을 한 순간에 뒤엎는 충격적인 한 가지의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he was also a mighty man in valor, but he was leper) 여기 나아만의 문제가 있습니다. \"문둥병자더라\" 바로 여기에 나아만의 인생이 고통스러워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의 좌절과 절망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비극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아만은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소유한 성공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찾아온 문둥병이라는 이 엄청난 장애로 인해 지금 그의 전 존재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으로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문제였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그가 직면한 인생의 현실이었습니다. 나아만, 우리의 모습 나는 나아만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행복을 위해 준비는 했으나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나아만의 인생은 \'조건 행복, 누림 불행\'의 삶이었습니다. 나아만의 표면적인 삶은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적 삶은 살이 썩어 들어가는 문둥병에 붙들려 괴로워하던 삶이었습니다. 고독한 삶이었고 회한의 삶이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이 안타까움과 비극이 나아만의 인생뿐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은 또 하나의 나아만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분명 행복할 것 같은 인생인데 그 내면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숨겨진 인생의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며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그 시대 나아만의 형편과 너무도 닮은 듯 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 나아만이 여러분 자신의 모습은 아닙니까? 아니면 여러분 가족 중 누가 아닐까요?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아만은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리를 듣습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이 소식은 나아만에게 복음(good news)이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함 받을 수 있는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나아만의 인생에 찾아온 기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나아만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곧 왕에게 보고를 드리고 허락을 받아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의 선지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나아만에게 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종입니다. 그것도 사마리아에서 잡아온 계집종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군대장관이 계집종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마리아는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아람의 군대 장관 신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문둥병자라는 사실이 자칫 이 일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날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져 오히려 국가적인 수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나는 여기서 나아만의 회복의 사모함을 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나아만의 열망을 봅니다. 그는 계집종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왕에게 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의 문서를 얻어 가슴에 품고 치료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금과 은을 가지고 말과 병거를 대동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도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고침 받으려는 사모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숨겨 두지 말고 해결함 받기를 원합니다. 깨끗하게 되었더라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깨끗이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은 무엇을 회복했습니까? 첫째, 육신의 회복 나아만의 문둥병은 치료되었습니다. 병들었던 육신이 회복되었습니다. 비 정상적이던 인생의 문제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나아만의 인생을 고통가운데 빠뜨렸던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의 절망과 좌절의 먹구름이 걷어지게 된 것입니다. 나는 금번 부흥회에 여러분의 육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잘못된 것들이 비정상적인 육신의 삶들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깨끗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영성의 회복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15절) \"내가 이제는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나아만은 육신의 문제만 해결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문제까지 해결을 본 것입니다. 비록 나아만이 욱신의 문제로 접근을 했지만 육신의 문제해결과 함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금번 심령 부흥회가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영성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일로 하나님을 주목하지 못했던 여러분의 눈과 입과 귀와 가슴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헌신의 회복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7절)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나이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고백해야 할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라는 신, 권력이라는 신, 명예라는 신, 사치와 향락이라는 신, 수없이 많은 세상의 신들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금번 집회에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들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회개의 회복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18절) 여기 \'림몬의 당\'이란 림몬 신전을 말합니다. 림몬은 아람의 국가 신으로써 폭풍과 전쟁의 신입니다. 나아만은 지난날 자신이 이방신을 숭배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범하면서도 잘못인 줄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유의 은총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회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막히면 우리는 질식하고 맙니다. 회개는 성도의 숨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회개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뉘우침의 시간들이 있습니까? 금번 집회에 회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의 위험성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나아만의 중요한 한 가지의 실수를 살피고 지나가야 합니다. 나아만이 사마리아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그때 선지자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종을 통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을 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멀리 아람 나라에서, 보통 사람도 아닌 군대 장관이 왔는데 이렇게 대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나아만이 분을 토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이것이 나아만의 실수입니다. 왜 나아만이 분을 내었습니까? 나아만이 병을 고치러 올 때 기대한 생각과 선지자의 처방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아만의 생각은 어떤 생각이었습니까? 사람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자신의 병은 선지자의 어떤 치료 행위를 통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분을 내어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나아만이 그 자리에서 분을 내어 돌아갔더라면 그의 인생의 문제는 해결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