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이지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
수6:26; 왕상16:34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호수아의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고 있고, 지난 특별새벽기도회에서는 요단강을 건너는 초자연적인 사건과 견고한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지는 역사를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전투에서 몇 가지 특기할만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 4장에 보면 요단강을 마른땅같이 건너고 난 뒤에 12개의 돌을 취하여 길갈에 기념물로 둔 일이 있습니다. 이 기념물을 세운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온 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능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수4:20-24).
사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사실을 기념하는 기념물들과 찬송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송시를 지어 불렀습니다(출15:1-18). 이 찬송시를 지어 부르게 한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7장에는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물을 두었습니다.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념물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미스바에서 회개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주신 사건을 기념하여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물을 통하여 과거 어느 한 시점의 역사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기억하고 믿음생활에 큰 도전과 자극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오늘은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난 뒤에 기념물을 세우지 않고 무너진 성 자체를 그대로 두고 이 역사를 기억하게 하려는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면 큰 복이 임하지만 무시하면 큰 저주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이 본문의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는 여리고 성을 폐허상태로 두게 하신 목적, 세 번째는 이 사건과 우리와의 관련성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난 뒤에 여호수아가 저주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여호수아 6:26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이 저주의 내용은 누구든지 무너진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에게는 그 기초를 놓을 때에 장자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 성을 다 건축한 뒤에 문을 달 때에는 막내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입니다. 이것은 다시는 성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어떤 역사적인 배경에서 이러한 저주를 하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간의 생활을 하고 난 뒤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맨 처음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길갈에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난 뒤에 하나님의 작전명령에 따라 맨 처음 여리고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여리고와 신약시대의 여리고는 위치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여리고는 구약시대의 여리고보다 1.6키로 정도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구약의 여리고는 해발 약 244미터 정도가 되지만 신약시대의 여리고는 해하 250미터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곳이지만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눅10:30)라고 한 것은 지형적으로 해발 약 800미터에 위치해 있는 예루살렘에서 해하 약 250미터인 여리고로 내려가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여리고라는 도시는 요단강 서쪽에 위치해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요새화된 도시로서 동쪽에서 팔레스타인 중심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발굴된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여리고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주전 1400년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성이 함락되었습니다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주전 약 8천년 경부터 1200년까지의 자료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자료들을 통하여 여리고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는 물이 풍부하고 종려나무가 무성한 도시였습니다(신34: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을 어떻게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병법이나 전술도 아니고 여호수아의 탁월한 지도력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 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6:3-5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일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부 병사들이 맨 앞에서 행하고 그 다음에 일곱 제사장이 나팔을 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가고, 그 다음에 후군 부대가 가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엿새 동안 돌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칠일 째 되는 날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고 신호를 보내면 따로 서서 기다리고 있던 온 백성이 외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수6:6-16).
우리가 이 방법을 볼 때 인간의 이성적인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볼 때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할 때 그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수6: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얻게 된 것은 인간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한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고, 문을 달 때에 막내를 잃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무너진 여리고 성을 폐허가 된 상태로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여리고 성을 폐허상태로 두신 목적
그러면 왜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진 채로 그대로 두게 하였을까요? 우리나 당시 구약시대 지형학적인 위치나 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던 여리고에 성을 건축하지 않고 폐허로 남겨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누구든지 일어나서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의 저주를 받을 것이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기초를 쌓을 때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 맏아들이 죽게 될 것이고, 문을 세울 때에는 막내아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걸어두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동화 속에 마귀할멈이나 요정이 마법을 걸어 놓는 일을 종종 보았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집 『옛 이야기와 교훈』이라는 책에 나오는 여려 편의 동화 가운데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되어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동화에 14세기 어느 나라에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던 왕과 왕비에게서 공주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 공주의 이름이 오로라입니다. 왕과 왕비는 기뻐하며 이 날을 축제일로 정하고 오로라 공주를 필립 왕자와 약혼을 시킵니다. 이 때 초대를 받은 6명의 요정이 초대되어 공주에게 선물을 1가지씩 주었습니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나타나서 공주가 16세가 되기 전에 물레에 손가락을 찔려 죽게 될 것이라는 저주의 마법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선물을 주지 못한 한 요정이 공주는 이 마법을 약간 완화하여 공주가 죽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에 보면 한 요정이 마법을 건대로 16세에 물레에 손가락이 찔려 잠을 자게 됩니다. 마치 이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이 마법을 걸듯이 여호수아가 이 성을 다시 건축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왜 여리고성을 무너진 채로 그대로 두게 하였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러한 저주를 하였을까요? 그것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본문이 신명기 13:12-18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 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찌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너의 열조에게 맹세하심 같이 네 수효를 번성케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정직을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여러분! 당시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알았겠지요? 그는 모세의 지도 아래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율법의 내용을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명기는 당시 이스라엘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 지금 여리고를 점령하고 난 뒤에 이곳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저주한 것은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보면서 하나님이 가나안의 악한 행동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악한 행동을 하면 여리고처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저주를 받아 무너진 성터를 그대로 두고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큰 긍휼을 베푸시고 번성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또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무너져 폐허가 된 여리고성을 보면서 이때의 역사를 상기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 성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어 변함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이 큰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의 역사에서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보면서 악을 행한 가나안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너진 성터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무너진 성터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한 병법(兵法)을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무너지게 한 역사를 보면서 당시의 역사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것이 여리고 성이 폐허가 된 채로 두게 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난 뒤의 사사 시대와 사울, 다윗, 그리고 솔로몬 시대의 통일왕국 시대와 분열 왕국 시대에도 오랫동안 여리고 성은 무너진 채로 약 500년 이상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분열왕국 시대의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874-853 B.C.)에 여리고 성이 재건축되었습니다. 이때에 여호수아가 예언하여 저주한 대로 성의 건축자인 히엘이 성의 기초를 놓을 때 그의 장자가 죽었고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이 죽었습니다. 여러분! 열왕기하 16:34을 보십시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아합 시대의 건축가 히엘이 건축하려고 할 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저주한 그대로 그 기초를 놓을 때 장자를 잃었고, 문을 달 때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왜 아합은 이 여리고 성을 재건축하려고 하였을까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여리고 성의 지형학적이며 전략적인 위치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이 성은 팔레스타인의 관문과 같은 곳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바알을 섬겼고, 온 나라가 바알도 섬겼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교시대로 나아가는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단과 벧엘에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를 가리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다”라고 하면서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금송아지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제1계명을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시대에 와서는 여호와 신앙을 거의 버렸습니다. 아합은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그대로 두지 않고 그 위에 성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랜 교회 역사에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시대를 가리켜 “배교시대”(apostas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워버린 아합과 이세벨은 비참하게 그 생명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역시 성의 기초를 쌓을 때 히엘의 장자 아비람을 잃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문을 달 때에 막내아들 스굽도 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3년 6개월 동안이나 배와 이슬이 내리지 않아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버릴 때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여리고 성을 재건하지 못하게 한 것은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악한 행동을 하면 여리고처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저주를 받아 무너진 성터를 그대로 두고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큰 긍휼을 베푸시고 번성하는 복을 주신다는 것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무너져 폐허가 된 여리고성을 보면서 이때의 역사를 상기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 성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고, 나아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변함없이 그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지우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가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3. 이 사건과 우리와 관계
그러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재건하지 말고 그대로 두게 한 사건과 오늘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문제는 이 사건의 신학적 교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의 신학적 교훈을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역사가 어떤 종류의 역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는 신학적인 역사입니다. 여기에 “신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해 주시며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가, 즉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시는가 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역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역사를 구원역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며 또한 그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의 계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본문도 역시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점령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혜와 전략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약속된 대로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언약적 축복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아합시대에 그 터를 없애버리고 성을 건축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기억할만한 역사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큰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시고 믿고 순종할 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왜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성경을 읽음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읽고 배움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고, 어떻게 교제하며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배우고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명한 저서를 읽으면서 그 저자를 만나 교제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세상의 책을 통하여 경험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실재의 경험세계가 있습니다. 과거 성경시대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큰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그 은혜와 능력을 지금도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하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 기록된 무너진 여리고 성터를 그대로 방치해 두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여리고성에 살던 사람들처럼 멸망하여 후세에 조롱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여전히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여리고의 무너진 성터를 보면서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고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합시대에 이 역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버릴 때 하나님께서 3년 6개월 동안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게 하여 고통스럽게 하시기도 하고, 급기야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하시듯이 하신다는 사실도 배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이 역사를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며, 지금도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 큰 능력으로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시는 것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