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당할 수 없는 주의 은혜 삼하10:1-8 내일이 추석입니다. 얼마나 좋은 명절입니까? 객지로 나간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기뻐하고 교제할 수 있는 날입니다. 한해 동안 풍성한 결실을 나누는 풍요로운 명절입니다. 얼마나 좋은 명절입니까? 좋은 추석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립니다. 주님의 날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의 어느 명절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명절이 좋고 특별한 날이라 해도,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셨습니다. 지옥의 형벌 받을 자리에서 천국의 영생복락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앞으로도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분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편).\" 그리고 하나님은 온 천하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한해 농사의 결실을 감사하지만,그 농사의 결실을 주신 분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감사하지만 우리는 천지만물이 주인이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1.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 다윗이 요나단을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자가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1절).\" 1)다윗은 언제 은총을 베풀고자 합니까?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다윗이 즉위한지 20년 쯤으로 생각합니다. 블레셋과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왕이 전사하고 20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동안 다윗은 주변 나라들를 정복하는 전쟁에 몰두했습니다. 이제는 나라가 안정되어 한숨을 돌릴 만한 기반이 마련된 때입니다. 다윗은 지난날 자신이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했고,요나단과의 약속을 이행할 때가 된 것입니다. 2)다윗은 누구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합니까? 사울의 집의 남은 자입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과연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사울왕의 종이었던 시바를 통해 수소문 한 결과 마길의 집에 살고 있는 요나단의 아들이요 사울왕의 손자인 므비보셋이 살아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왕과 이스라엘이 길보아 전쟁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모가 급히 안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려서 두 발이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때일입니다. 3)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무슨 은총을 베풀었습니까? 7절에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므비보셋은 두려웠습니다. 한 왕국이 망하고 다른 왕국이 세워지면 이전 왕국의 모든 핏줄은 다 멸절시키는 것이 예사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기를 찾을 때 죽을 줄로 알고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난날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이 목숨을 걸고 다윗을 살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미워해서 죽이려 했지만,요나단은 왕자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다윗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왕의 밭을 다시 회복해 주었습니다. 당시 사울왕의 종 시바가 그 밭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시바로서는 큰 재산상의 손실이지만 므비보셋에게는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재산까지 회복한 것입니다. 나아가서 다윗은 므비보셋을 왕자와 같이 대우해서 다윗왕과 함께 상에서 먹도록 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큰 사랑이고 호의입니다. 4)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모든 은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윗은 지난날 받은 은총을 갚는 것이고,지난날 행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넉넉함과 신실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런데 이 은총은 다윗의 인간적인 면모로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3절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리라\"고 합니다. 자신이 베푸는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입니다. 인간 다윗의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베푸는 은총입니다. 신앙 때문에 베푸는 은총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언약적인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지난날 다윗은 요나단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나단과 언약한 바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세에게 베푼 은총은 영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 때문에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은혜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죽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시기로 언약하셨습니다. 므비보셋이 은총을 입은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은 은총이 무엇입니까? 밭을 회복하고 식탁에서 먹는 은총이 무엇입니까? 영원히 멸망당하고 죽을 자가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하나님의 친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영으로만 교제하지만,장차 천국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게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고난당하는 욥을 아십니까? 욥의 자녀 열명이 죽고 재산을 약탈당하고 명예를 잃었습니다. 친구도 아내도 욥을 죄인 취급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이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잃었던 모든 것을 갑절로 회복했습니다. 욥이 회복한 것처럼,므비보셋이 회복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감당할 수 없는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총을 입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은총을 입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 므비보셋은 처음에 다윗왕의 부름을 받았을 때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염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지난날 처럼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요셉을 노예로 판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괜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심판의 보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천둥과 번개가 치고 풍랑이 크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곧 잠잠케 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4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절).\"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시23:4절)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돈에 매수되어서 이스라엘을 백성을 감히 저주하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저주하는 하지 못하고 축복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한 자를 누가 저주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2)은총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왕의 호의를 받고 감격했습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8절).\" 여기서 비교되는 것이 있습니다. 왕과 개입니다. 왕은 존귀한 자의 상징입니다. 개는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천하고 부정한 것입니다. 더구나 산 개도 아니고 죽은 개는 전혀 돌아볼 가치가 없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본문은 므비보셋이 절뚝발이라고 거듭 밝힙니다. 3절에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13절에도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왕에게 은총을 입은 감격을 어찌 형언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입니다. 죽은 개보다 못하고 절뚝발이 보다 못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입은 온총으로 얼마나 감격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도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이 사라지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남다른 감격이 있었습니다. 죄인의 괴수인 나에게,혹은 만삭되지 못한 나에게 어찌하여 사도의 직분을 맡기시고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까? 중국에서 온 사랑방 선교 편지을 잠간 소개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뭐 잘나서 이렇게 살고 저들은 저렇게 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낍니다(임채석 중국 선교사).\" 선교사와 탈북자가 뭐가 다릅니까? 우리가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선교사님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격을 잃지 맙시다. 3)끝까지 겸손함으로 은총을 간직해야 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절).\" 삼하16장에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당해서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 때 사울왕의 종으로 므비보셋을 섬기던 시바가 다윗에게 나아옵니다.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나귀에 떡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삼하16:1절).\" 그런데 시바가 므비보셋을 참소합니다.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삼하16:3절).\" 므비보셋이 다윗을반역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므비보셋을 역적으로 만들어서 재산을 가로채려는 흉계였습니다. 은총을 뺏아가 가는 도둑은 교만입니다. \"내가 이만큼 살만 하다. 내가 이만큼 일했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 이런 것들이 다 교만입니다. 반역이고 불순종입니다. 이것이 은총을 빼앗아 가는 도둑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고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립시다. 은총으로 시작해서 은총으로 끝나야 합니다.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사울왕이 이스라엘의 처음 왕으로 세움을 받았는데 왜 은총을 박탈당했습니까? 불순종과 거역입니다. 처음에는 왕으로 뽑히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수레 밑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난 후에는 이런 저런 핑계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셨고 사울왕은 버렸습니다. 우리 신앙의 큰 물줄기가 어디로 가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아래,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나아갑시다. 은혜에 이르는 첫걸음은 나에게 은혜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은혜를 소유한 첫걸음은 더 큰 은혜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 잊어버리고 다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은혜로 구원받았고,지금까지 은혜로 살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은혜의 도가니 속에서 다시 정금같이 새롭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