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6. 주일 낮 예배 설교문
【맥 추 감 사 절】
본 문 : 출애굽기 16 : 4 - 16
제 목 :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찬 양 : 67, 306, 307, (310) 488, 489.
※ 본문 중에 인용된 성구는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7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도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생기의 바람이 불어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듯이 여러분의 심령이 살아나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은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헤아리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이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이 절기를 기쁨과 은혜로 지키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의 생활을 하면서도 헌금을 할 때에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는 대개 4대 절기를 지킵니다.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을 지킵니다. 이 4대 절기가 모두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특별히 부활절과 성탄절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절기이며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은 생활과 관련하여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특히 오늘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금년의 전반기의 수확, 곧 금년의 처음 익은 곡식을 거두어 감사하는 절기이며, 추수감사절은 후반기 수확 곧 가을철에 거둔 수확을 인하여 감사하고 한 해 동안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23: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아-멘!>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래서 오늘 이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의미와 또 지키는 방법 등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게 이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가를 조명해 보고 또 더 나아가 우리의 생활의 감사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 반 만에 신 광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16:1) 그들인 홍해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또 엘림에서의 기적 등등을 체험하면서 드디어 신 광야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신 광야는 말 그대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거칠고 황량하여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형편도 안 되고 짐승들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도 없습니다. 무엇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불평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갔습니다.
첫째는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둘째는 목말라 못살겠다. 마실 물을 달라
셋째는 고기를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되어 현기증이 일어난다. 고기를 달라.
넷째는 군것질을 하고 싶다 포도나 무화과 석류 같은 과실을 달라.
다섯째는 길이 너무 험악하니 편한 길로 가고 싶다. 는 것입니다.
마치 성질 나쁘고 버릇없는 아이들의 떼쓰는 것 갔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불평과 원망을 다 종합해 보면 한가지인데 ‘잘 먹고 편하게 살고 싶다’ 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어딘지도 모르고 이렇게 험한 길을 가야 한다면 그냥 애굽으로 되돌아가서 비록 종살이라도 배불리 먹으면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8:3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인들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인들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을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서 저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어도 그때만 지나면 곧 잊어버리고 원망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만나를 내려 먹여주었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메추라기를 주어 먹게 하셨습니다. 밤이면 불기둥으로 어둠을 밝혀주시고 또 추위를 몰아내 주셨습니다. 낮이면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 주셨고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와 같은 생활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활을 본받아야 합니다.
(히11:8)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하였고, 창12:4절에는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오늘의 우리들은 원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창12;1절 말씀에 하나님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고 할 때 원망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또 22장에는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였을 때도 순종하여 바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하면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애굽에서 나와서 벌서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홍해에 당도하였을 때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올 때에 원망을 하였고,
두 번째 원망은 라마에서 마라의 쓴물 때문에 원망을 하였고,
세 번째가 바로 신 광야에서 고기와 떡을 먹을 수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면 곧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렇게 원망을 합니까? 오늘의 우리들도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조금만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니 축복이니 하면서 할렐루야!! 하지만 또 조금만 잘 안되고 환난이나 고난이 닥치면 금방 돌변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이요 생활입니다.
이제는 좀 더 성숙된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굳이 욥을 말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믿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새롭게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주의 종들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본문 7절에서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고 하였고 8절에서는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즉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너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는 중인데 그런 까닭으로 너희가 우리를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눅20장에서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을 때에 다시 다른 종을 보내고 결국 아들까지 보냈으나 그 아들마저 죽이고 포도원을 찬탈하려고 했을 때에 돌아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종들은 주인의 명을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 종을 잘 영접하는 것은 농부들의 마땅한 의무이며, 또한 그것이 포도원 주인을 잘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3) 하나님은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본문 7절 말씀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8절 말씀에는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그의 임종을 앞두고 백성들의 장로와 족장들과 두령들을 모아놓고 일장 설교를 합니다. 그 말씀의 요지는 앞으로 자기가 죽고 난 뒤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고 그것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27)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런 생명도 없는 돌멩이도 백성들의 언약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어찌 듣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원망과 불평 소리를 들으시지만 또한 우리의 부르짖는 간구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시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시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욥23: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고 욥은 자신의 간구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그 믿음대로 이루어져서 환난을 다 겪고 난 후엔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다 같이 찬송488장 2절을 부르겠습니다.
내 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2.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1) 만나가 무엇입니까?
만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뜻입니다. 바로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가 어떻게 해서 내려지는지, 또 20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40여 년간이나 배불리 먹을 수가 있는지,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신8:3)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만나는 인간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적은 사람의 지식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과학이 우주 공간을 다녀오고 우주여행이 머지않았다고 하여도, 인간의 의학이 발달되어 심장을 이식하고 줄기 세포를 배양하여 복제 인간을 만든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기적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나가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은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만나가 처음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이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모세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니라” 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만나는 꿀 섞은 과자의 맛 같았다고 하였고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희한한 식물(食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참 영혼의 만나로 삼는 사람들은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며(요6:35)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요3:16)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온 신령한 양식이며(고전10:4), 또한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기 때문입니다.(요6:51)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은 광야보다도 더 삭막한 이 세상에서 이 땅의 떡만을 먹을 것이 아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2) 만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몇 가지 계명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 계명을 살펴보면
첫째, 가족 수대로 당일 먹을 만큼만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탐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써 물질의 축적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침까지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만나는 내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매일 이른 새벽 해뜨기 전에 거두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을 방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만나인 말씀은 새벽에 거두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새벽은 항상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시간이며 역사 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만나를 거두지 못한 사람은 그날은 굶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새벽에 생명의 만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있습니까? 아니면 매일 굶어서 말씀의 기근이 들어 아사(餓死) 직전은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새벽에 부르짖으면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고(잠8:17) 새벽에 응답을 하셨으며 새벽에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도 새벽에 갈라졌고 여리고성도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셋째는,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전날에는 2일분의 만나를 거두고 안식일에는 절대로 들에 나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어기고 안식일에도 나갔다가 만나를 거두지 못하고 되돌아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을 책망을 하셨습니다.
(출16:27-29)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에도 육신의 삶을 위해서 들로 밭으로 또는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책망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3. 하나님은 항상 풍성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창고가 가득히 찬다” 고 하셨습니다. 무슨 창고가 가득히 찹니까? 육의 창고가 가득히 차고, 심령의 창고가 가득히 찹니다. 하늘나라의 창고가 가득히 차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은 드리는 자의 하나님이시며 드리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단에 제물이 빈약하면 축복의 단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왕상 18:30절 이하의 말씀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 850명과 기도의 대결을 할 때에 송아지를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의 계속된 가뭄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물을 열 두통이나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불의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이슬조차도 내리지 않던 하늘이 열리고 비가 쏟아졌습니다. 할렐루야!!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또 창27:27절 말씀에 이삭은 아들을 축복하기 전에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물이 있는 곳에 반드시 응답이 임하였습니다. 벳새다 바닷가에서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더니 5천배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기만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제는 드리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위한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우리 인간들에게 드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드리라고 한 것은 우리들을 축복하시기 위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은 또한 계산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고 따지고 또 내가 이만큼 헌금을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큰 복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눅6:38)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어린아이와 같이 약한 신앙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고,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든지, 안 주시든지 생각지 말고 드릴 줄 아는 신앙인 이 되어야 합니다. 금년의 맥추감사절은 정성껏, 그리고 힘껏,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의 대열에 참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중 3대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출23:14-16)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맥추절은 칠칠절 또는 초실 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첫 열매를 거둘 때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 처음 거둔 열매로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며 노동도 하지 않고 거룩한 성일로 지키되 수송아지와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누가 거역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신 후에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기를
(수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이 됩니다.
(신7:11-12)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금년도 맥추감사절은 정성과 진실과 감사가 충만한 감사절이 되어서 범사가 잘되고, 기쁨이 샘솟고, 하늘의 위로와 상급이 넘치는 축복의 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