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아는자

은혜를 아는 자
삼하9:1-13





우리 인간의 위대함이 어디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인간이 생각을 한다는 것, 아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했고, 또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했을 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인간이라면 은혜 받은 것을 알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인간이 이를 알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때로는 짐승들도 주인을 알고, 자기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는 행동을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이야기입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요, 사울 왕의 손자였는데 요나단 편으로 보면 친구의 아들이지만 사울 왕 편으로 보면 정적의 손자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정적이면 누구든지 다 죽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I. 어떤 은혜를 베풀었습니까?



먼저, 사람을 통해 찾아보게 했고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당시 므비보셋은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 왕에게 들키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사람들 눈에 드러나지 않게 숨어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자기를 찾고 오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겠습니까? 이런 그에게 다윗은 무서워 말라고 하면서 그의 조부 사울의 밭도 도로 주었고 심지어는 그를 자기의 상에서 평생 같이 먹도록 까지 해 주었습니다.(7절) 이 므비보셋은 두 발이 다 절뚝거리는 장애인이었는데 그 당시 풍속으로 장애인을 왕궁에 들여보내고 왕의 상에 같이 앉게 하는 일은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이런 파격적인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II. 그러면 그가 왜 므비보셋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었습니까?



1.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3)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실로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란 어떤 것입니까? 히브리 원어로는 \'헤쎗\'이라는 히브리말인데 은혜라는 말입니다. 은혜란 어떤 것입니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하 7:18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자격 없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늘 이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빚진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생각을 갖고 있다보니 므비보셋 같은 사람 대할 때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므비보셋이란 사람, 정말 은혜 받을 만한 자격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의 손자로 정적이며 살려두면 후환이 있을 수도 있는 위험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는 두 발을 다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그런 사람이었는데 은혜로 구원받고 이스라엘의 왕까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까?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8,9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입니다. 값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당연히 다윗처럼 이 은혜를 남에게 베풀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2:10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우리들도 예수님 안에서 그런 선한 일들을 하게 하기 위해서 라는 말씀입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은혜 베푸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윗처럼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그런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 그가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이유는 요나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다윗이 무서워 떠는 므비보셋에게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합니다. 또 그 앞에 1절에도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알고 생각할 뿐 아니라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도 기억했습니다. 요난단을 생각하면 늘 그에게 빚진 것 같고, 사랑을 입어, 이것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요난단에게서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환난 때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왕의 아들로서 자기를 특별히 사랑해 준 것입니다. 집을 떠나 왕궁에서 일하는 다윗을 사랑하여 그를 위로해주고 격려도 해 주었으며,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의 미움을 받을 때 아버지 앞에서 변호도 해 주었고, 후에는 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주어 도망가게도 해 주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 하니라\"

3절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삼상 20: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다윗은 요나단에게 큰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은 조가를 지어 부르기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고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다윗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세상을 떠났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이런 은혜를 베푼 것이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도 크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가깝게는 부모님의 은혜로부터 시작하여, 스승들의 은혜, 선배들의 은혜, 친구, 이웃들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고 삽니까?

저도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의 은혜가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를 위시해서 처음 예수 믿도록 전도해 준 친구의 은혜, 믿음으로 키워준 목사님, 또 청년 때에 학생 때에 내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옆에서 도와 준 여러 믿음의 선배와 스승들이 있습니다. 제가 예수 믿고 군대를 갔다와 복학해서 대학생활을 할 때, 저는 믿음의 형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만났던 것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홍정길 목사님입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는 도중, 저를 아껴주고 오른팔처럼 여기며 항상 도와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누님같이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준 권사님, 집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아니면 제가 지금 어떻게 여기에 서있을 수 있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아는 사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도리이며 또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도리가 됩니다.



III.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그 은혜를 갚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다윗이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은혜 베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이 베푼 은혜,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베풀 사람과 방법을 생각하면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므비보셋을 찾게 되었고 찾은 후 그를 왕궁으로 데려와 평생 자기와 함께 있도록 해 준 것입니다. 므비보셋을 먼저 만난 것이 아니라 먼저 다윗의 마음속에 은혜에 대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1. 오늘 우리들도 먼저 우리가 은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의 므비보셋은 누구겠습니까? 나의 은혜를 베풀 대상,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늘 생각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주위에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분을 두려워하며 그 분과 담을 쌓고 사는 우리 가족들, 친지들, 이웃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마치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므비보셋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므비보셋이 살던 지역 로드발이라고 하는 곳은, \'로\'는 없다는 말이고 \'드발\'은 초원이라는 말입니다. 즉, 풀 한포기 없는 땅, 아마 사람들이 살지 않는 아주 메마른 땅이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숨어서 맘에 분노와 두려움을 가지고 살던 그는 장애인으로, 맘대로 다닐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을 떠서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공연히 다윗을 겁내고 어두운 생활을 하며 쓸데없는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던 것과 같이, 그들도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공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고 있으며 따라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에게 사로 잡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에 어두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 속에 살며 육신적으로도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아, 저 사람이 므비보셋이구나. 내가 은혜를 베풀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구나\"라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보니 제 마음 속에서 큰 근심꺼리가 벗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던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그 때 제게 생각되는 것이 \'아 내가 왜 일찍 이런 삶을 몰랐던가? 내 주위에는 아직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 증거하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다가 결국은 목사까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므비보셋과 같은 사람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2. 그 다음에는 그들을 우리들이 거하는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자기가 사는 왕궁으로 인도해들였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종 시바를 불러서 므비보셋을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처음에 므비보셋이 왕이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겁이 덜컥 났을 것입니다. 아마 도망치려했을 지도 모릅니다. 두 다리가 온전했으면 아마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가지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다윗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발각되면 그대로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데, 그는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 시바를 시켜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 우리가 은혜를 나누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작 하나님이 부르신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으로 나오겠습니까?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안 가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교회 나갈 때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꼭 못 갈 데 가는 것처럼 끌려가서는 교회당 문 앞에서도 망설였습니다. 그리고는 시간 될 때까지 교회 당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담배 필 것 다 피고 시간이 되어야 할 수 없이 친구에게 끌려들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그랬던 것 같이 그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므비보셋이 다윗과는 정적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그들을 찾아가야 하고 그들을 주님의 품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넓은 품으로 강권하여 인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벌리는 태신자 운동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또 기회를 만들어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내자는 것입니다. 이 일은 은혜를 아는 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은혜 받았고 자기도 다른 사람들 때문에 예수 믿게 되었다면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자기도 그렇게 해서 은혜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 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은혜를 모르는 사람, 은혜를 갚지 않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의 은혜로 이렇게 믿음생활 한다고 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없고 또 그들에게 은혜 베푸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태신자 운동에 꼭 참여하십시오. 그래서 오는 10월달에 남서울 새생명 축제가 있을 때 꼭 그들을 데려 오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은혜를 아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는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었던 것 같이 우리도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어야 합니다.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므비보셋을 안심시켰습니다. 친히 그의 이름을 불러 무서워말라고 했고 정적으로서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었으며 할아버지의 밭을 다 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도 용서해 줄 것은 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돌려 줄 것이 있으면 다 돌려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를 자기 궁궐에 들어와 살도록 했습니다. 함께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으면 그들의 과거를 다 용서하고 그들을 영적 가족으로 맞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거동락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잘 적응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 해소시켜주어야 합니다. 평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난 다음에 한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먹고 함께 마시는 것과 같은 한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은혜를 아십니까?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여러분을 찾아와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생활하게 해준 사람의 은혜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은혜 아는 자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IV. 마지막으로 이런 은혜를 받은 므비보셋의 태도를 봅시다.



처음에는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 나아올 때 몹시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부드러운 말을 듣고 또 그에게 은혜 베풀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기 8절을 보십시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역시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다윗 왕의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다윗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그를 속이고 다윗 왕을 따르지 못하게 하였지만, 성경은 \"그가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박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다(왕하 19:24)\"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때에 그를 맞으며 그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다윗에게 은혜 받은 일을 말하는데,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아오리이까(28절)\" 했습니다. 매우 겸손한 자세이며 다윗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 자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윗 왕이 그가 시바에게 속은 줄을 알고 그에게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했을 때 그는 말하기를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30절)\" 하면서 자기는 재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단지 다윗 왕이 궁에 돌아 온 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얼마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까? 다윗이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뿌듯했을 것입니다. 비록 두 다리를 저는 불구자이지만 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므비보셋도 평생을 살면서 다윗에게 받은 은혜를 베풀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므비보셋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평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축복보다 내가 받은 은혜를 더 귀하게 여기면서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 쉬 잊어버리고 또 하나님 은혜보다 그 축복을 더 귀하게 여기면서 축복 받기만 위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은혜를 아는 자, 또 므비보셋처럼 은혜를 아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까지 알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므비보셋처럼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끝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는 삶, 다윗처럼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 그것이 우리들의 기도생활로, 우리들의 헌금생활로, 우리들의 전도생활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남서울교회 성도 모두가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사랑이 있고, 감격과 기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 가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