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삶 변화

은혜의 샘 \'엔학고레\'
삿15:14-20





하나님께서 삼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원하셨고, 오늘 은혜의 샘 \'엔학고레\'를 통해서 넉넉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삼손을 기억하며 말씀을 우리가 나누기를 원합니다.
삼손이 아내를 얻기를 幣漫?부모에게 떼를 쓰고 결국 그 부모는 삼손의 요청에 할 수 없이 잔치를 베풀어주고 블레셋 딤나의 한 여인을 며느리로 맞게 됩니다.
하지만 딤나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이 그들의 한 지역의 주민 되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아서 시비를 걸게 됩니다. 그때 삼손이 \"내가 수수께끼 하나를 낼테니까 그것을 너희들이 맞추면 내가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선물로 주겠지만 만약 너희가 맞추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30벌씩 주어야 한다\" 고 제안한 뒤 퀴즈를 내기를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라는 문제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딤나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찾아와 \"만약 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너와 너의 아비의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며 협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에게 울면서 부탁을 합니다. \"수수께끼의 답을 좀 알려주세요. 그 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 집안이 완전히 몰락할 터이니 나에게 답을 알려 주시오\" 7일 동안 혼인 잔치가 벌어졌지만 아내에게는 눈물의 한 주간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눈물은 과거나 지금이나 능력이 있고 어떤 변화의 힘이 있는것 같습니다. 결국 삼손도 이 딤나 여인의 눈물의 호소에 못 이겨서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게 되고 그 여인은 그 길로 딤나 사람들에게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삼손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삼손은 자신 밖에 모르는 문제의 답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성읍 사람들이 말합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답을 맞추었습니다.
그때에 삼손이 알아챘습니다. \"내 아내를 닥달해서 저 사람들이 답을 알아냈구나\" 삼손이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결국 삼손은 그들에게 옷 30벌씩을 주어야 했는데 아스글론이라고 하는 블레셋 동네로 내려가서 그곳 사람 30명을 죽이고 그들의 옷 30벌을 가지고 와서 딤나 사람들에게 주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또 복수하느라고 삼손의 아내와 부모들을 협박하고 고통을 주게 됩니다.
협박을 못이긴 장인도 \"이제는 내가 너를 사위로 생각하지 않겠다\"며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 싶어하는 삼손을 쫓아 내자 삼손은 또 복수의 칼을 갈게 됩니다.
여우 300마리를 잡아 꼬리에 꼬리를 붙들어 매고 거기에 횃불을 달아 그들의 감람원과 곡식 단에 몰아넣습니다. 온통 곡식 단과 감람원이 불바다가 되고 말지요. 이 사실을 안 블레셋 사람들도 삼손의 아내되었던 여성과 그의 아비를 불살라버리게 됩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복수의 모습이지요. 마치 요즘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반격의 악순환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의 모습도 결국 정치적, 군사적 기득권 선점을 위한 복수의 반복임을 잘 알 수있습니다.
사실 미국과 소련이 강대국으로 서로 적대적이었을 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 지금의 탈레반 정권을 미국이 도와주었습니다. 북부 동맹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지배자였고 소련의 후원을 얻어 정권을 유지하던 부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입장이 바뀌어 미국의 도움으로 북부동맹이 탈레반 정권을 항복시키고, 9.11 뉴욕 무역센타 테러의 주범이라고 지목된\'오사마 빈 라덴\' 체포에 막바지 땀을 흘리는 모습입니다.
결국 세계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하는 것, 오직 한가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또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원수가 되거나 우방이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복수란 언제나 또 복수를 낳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블레셋이라고 표현된 한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유독 삼손이 싸우고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아주 중요한 말씀 포인트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과 할례받지 못한 백성의 싸움이어야 하는데 블레셋과 삼손의 싸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유다 백성들은 뭐하는 것입니까? 구경꾼입니다. 나아가서는 방해꾼입니다. 11절에 보면, 삼손이 블레셋을 공격하여 승리하자 유다 사람들이 삼손에게 몰려와서 말하기를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오히려 블레셋 역성을 들고 있는 것이지요. 기가 막힌 유대인들의 상황 판단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블레셋의 식민지로서 먹고 살만한데 왜 자꾸만 분쟁을 일으키느냐?\" 그 말입니다.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은 일제 앞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편안히 살던 동족들에겐 눈에 가시같았지요. 최근 정부의 한 위원회에서 일제시대에 반 민족적 행적을 한 이들을 찾아내어 공개적으로 이름을 발표하는 사업을 위해서 수억원의 예산이 집행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일반 사회단체에서는 일본에 협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명단이 이미 나와있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발표한다고 하면 충격이 대단할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겼던 사람들 중에는 사실, 일제에 협력하기 위해 어린 여학생들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보내는 일에 많이 앞장섰던 사람들도 있고, 또 독립군들을 수 없이 죽이고 붙잡히게 했던 이들이 밝혀질 것입니다만 그러나 과거를 끄집어내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들의 오늘의 삶의 발목을 계속 잡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용서받을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세상은, 정부는, 역사는 과거를 용서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용서와 관용으로 새롭게 품에 안아 다시한번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삼손은 외롭게 혼자 싸우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위해서 힘을 주고, 격려해 주고, 동역자가 되어야 할 유다 사람들이 삼손에게 3,000명이나 몰려와서 \"지금 우리가 블레셋의 관할을 받고 있는데 이대로가 좋은데 왜 자꾸만 불란을 일으키느냐?\"고 삼손에게 항의하고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불의의 삶에 안주하고 있는 유대 민족들,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을 구원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사탄 마귀의 생활에 눌러 살면서도 불편한 줄 모르는 그런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불의에 젖어 있어서 이제는 불의가 오히려 편한 그런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그 불의에서 나오라고 하면 오히려 짜증을 내는 사람들, 부정과 부패에서 뇌물과 순회의 생활이 아주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그 삶에서 나오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들 바로 오늘 유대 백성들의 모습이예요.

이들만 그렇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우리의 교회 안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안주하고 싶어하는 교인들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교회가 좋은 교회, 이름도 알 것 없고 일도 안시키는 교회, 그냥 예배만 보고 가도 아무런 부담이 안되는 교회, 봉사나 헌신을 할 필요도 없는 이런 교회가 좋아요\"라고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치 송사리떼 몰려다니듯이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닙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목사가 유명하다고 하더라. 어느 교회가 시설이 좋다더라\" 몰려다니는 서울에 이름 없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그래서 모인 교회들, 결국 영적인 오합지졸들만 웅성거리는 집단에 불구해요.

우리가 왜 새해를 위해서 사역 축제를 합니까? 왜 기도로 새롭게 깨어나고, 왜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나자고 하는 거예요? 안하면 여러분들도 편하시지요. 저도 편해요. 저도 사실은 이런 큰 일을 하면 마음에 영적인 부담이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육신적으로도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영적인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청지기는 언제나 주인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의 주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교회의 청지기라면 언제나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매일 찬양하지만, 또 \"성가대가 찬양하겠습니다\"하면 떨리지요.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곡 한 곡을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합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가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이고, 기도자도 마찬가지이고,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는 프로가 없어요. 언제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아마추어 정신을 가지고 오늘 내가 주님 앞에 처음 나온 두렵고 떨린 모습이 되어야 그것이 예배자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모습의 원형이 무엇입니까? 엎드려 절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는 그 심정으로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무슨 프로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의 안주의 모습을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렇게 안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냥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영적인 진보가 있겠습니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도 어떤 대는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하는 안타까움도 받지만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나를 일깨워주고 잠자는 영혼을 깨워주어서 결국 일꾼이 되게 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그러한 흰 옷 입을 수 있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주의 종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도소나 구치소에 가서 가슴을 치면서 상담자들에게 고백하는 것이 뭔지 알아요? \"내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못된 짓을 해도 우리 부모들이, 우리 형제들이 한번도 나에게 제대로 야단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때 나에게 그렇게 강하게 권면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그때는 싫은 소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로 호소하고 싫어도 잠자는 영혼을 깨워야 나중에는 그때의 고마움을 깨닫게 될 거예요. 이 땅에서 그 고마움을 우리가 듣지 못하고 천국에 가서 듣게 되더라도 우리는 이 옳은 일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도 선교 회장님들을 많이 선출했습니다. 남녀선교회, 또 특수선교회, 많은 선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평안의교회는 모든 조직이 아주 단순합니다. 선교회와 속회, 그리고 선교 지향적인 교회입니다. 선교회가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셀 그룹처럼 번성해 나가야 돼요. \'cell\'은 뭐예요? \'세포\'입니다. 자꾸 자라면서 분열해 주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새해를 앞두고 임명 받으실 선교회장은 누가 되어야 옳은 것입니까? 그 선교회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 고참이 선교회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까? 말 잘해야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까? 돈 많이 가진 사람이 해야 되는 것입니까? 누가 해야 되겠습니까? 가장 원칙적인 선교회장의 자격은 전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선교회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집사님이 되어야 합니까? 전도 많이 하는 분.. 누가 권사님이 되어야 합니까? 집사님보다 전도를 더 많이 하는 분.. 누가 장로님이 되어야 합니까? 권사님보다 더 많이 전도하는 분..
이제 분명해졌지요?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일꾼이요, 중직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해졌지요. 전도하지 못하면서 무슨 회장을 합니까? 전도하지 못하면서 무슨 임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로 그것을 회개하고 깨닫고 도전 받자고 사역축제를 하는 거예요. 전도가 아니면 우리의 사역은 의미가 없는 거예요. 모든 그리스도인 교회의 최종적인 목표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목표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모임은 그저 인간적인 모임에 불구할 뿐이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를 위해서 세움 받은 우리들, 전도를 위해서 부름 받은 우리들, 영혼 구원의 사람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하실 그 영광의 삶을 기억하면서 전도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삼손의 삶의 두 번째 문제는 무엇입니까? 언제나 혼자에서 오는 한계 곧 \'탈진\'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목숨을 다해서 일하지만 언제나 혼자라고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18절에 보면 삼손이 일천명을 나귀 턱뼈 하나로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고 나서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일을 행했지만 이제 내가 목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할례받지 못한 백성들에게 죽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엄청난 승리, 철기문화, 철기의 무기로 무장한 그런 블레셋을 나귀 턱뼈를 가지고 승리한 삼손입니다.
능력으로 보면 엄청난 능력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승리하고 나서 탈진에 빠진 거예요. 마치 엘리야가 우리가 말씀을 보면 열왕기상 19장에서 갈멜산 승리의 극적인 승리의 결과 후에 그는 광야로 도망가잖아요. 그리고 로뎀나무 밑에서 헐떡거리면서 \"주여, 나만 남았거늘 죽여주시옵소서. 나만 남았습니다\"

큰 믿음의 승리 후에 왜 이런 탈진이 오는 것입니까? 엘리야나 삼손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제나 혼자 일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기껏해야 엘리사 하나를 키웠어요.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해답은 무엇입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너를 위해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놓았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하면 너도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라는 그 말이예요.
혼자 일하지 마십시오. 능력이 뛰어나다고 잘난 체 하지 마세요. 더불어서 일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자기 혼자 내는 것은 몇 십만원, 몇 백만원 척척 내면서도 같이 내자고 하는 건 한 달에 만원 회비도 안내는 사람도 있어요. 더불어 일할 줄 모르면 혼자 암만 잘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올해 가기 전에 선교회 회비 밀린 것 있으면 모두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올해를 멋있게 마감해야 합니다. 화장실 그냥 나온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올해를 마감해서는 안됩니다. 아주 깨끗하고 상끔하게 올해를 마감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일하는 삼손은 목숨을 다했습니다. 엘리야를 목숨을 다했습니다. 죽을 각오로 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혼자 일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삼손의 한계였습니다. 리더십이 부족한 것이지요. 언제나 혼자만 싸웠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삼손의 모습을 \'고독한 솔로\'라고 그렇게 별칭을 붙여준 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지혜로운 하나님의 일꾼들은 언제나 혼자 일하지 않고 함께 일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을 볼까요? 물론 자신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고생을 말할 수 없이 했지만 언제나 그에게는 동역자들이 있었어요. 디모데가 있었고, 목숨을 내어놓기에 눈을 떼어주려고까지 마음을 먹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평생 선교에 필요한 선교비를 후원하는 에바브로디도도 있었습니다. 실라가 있었고 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한때 그는 삼손처럼 혼자서 일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혼자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결국은 그에게 아론을 붙여주셨고, 미리암을 붙여주셨고,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심으로 그의 사역이 온전케 된 줄로 믿습니다.
다윗을 생각해보세요. 다윗이 늘 고난의 자리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실 다윗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변화시켰어요.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을 도움이 되는 자들로 변화시켰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엘리트가 모이는 집단이 아닙니다. 누구나 오는 거예요. 빚진 사람도 오고, 도망한 사람도 오고, 사기 치고, 그리고 온 사람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교회가 모든 사람이 누구든지 올 수 있되 여기에서 한 달, 일년 시간이 가면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해 가면서 영적인 엘리트로 제자로 바뀌어져 가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변화의 물결에 여러분들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인도함에 여러분들이 순종해서 변화의 물결에, 거룩함의 물결에, 헌신의 물결에 여러분들을 맡기는 거예요. 그래서 이 교회에 왔을 때는 어떤 모양으로 왔든지 주님이 불문하시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되어지고 새로워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가 가만히 두지 않아요. 그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바로 오늘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함께 일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제가 늘 감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 6분의 시무 장로님들이 너무나 저에게 좋은 동역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제게 제일 기쁨입니다. 또 장로님들은 주변에 권사님, 집사님들이 좋은 장로님의 동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힘을 주어야 합니다. 집사님들은 주변에 속회나 선교회에 마음이 맞는 좋은 동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혼자 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자, 삼손과 지금 엘리야 같은 사람 혼자서 일하다가 목숨을 걸었지만 결국 피곤해 지고 두려움이 생기고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레히에 오목한 곳을 터치셔서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게 했습니다. 목말라 죽겠다고 하는 삼손에게 물을 넉넉히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마시는 삼손은 정신이 회복되고 소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샘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했습니다.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 우리 대학부의 애칭은 \'엔학고레\'입니다. 청년부의 애칭은 \'다윗\' 아닙니까? 멋있으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의미가 주는 생생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엔학고레\'에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그 부르짖는 샘에서 내가 먹고 마시고 소생하여 다시금 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그 자리, 바로 이 평안의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엔학고레\'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안주적인 소극적 삶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리더십의 부족으로 인한 솔로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엔학고레\'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한이 없어요. 결국 \'엔학고레\'의 은혜의 샘은 삼손을 소생시켰습니다. 사명을 소생시키고 그의 삶의 희망을 다시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물이 많아도 목마르겠거니와 내가 주는 물은 샘솟는 생수가 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되리라\" \'엔학고레\'의 샘 생수여야 합니다.
오늘 이 제단에서 여러분들이 이 생수를 공급받고 주님과 함께 더불어 평생토록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동역자로서의, 청지기로의 삶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의 하나님, 이 평안의 제단이 \'엔학고레\'가 되게 하옵소서. 목마른 자들이 와서, 피곤한 자들이 와서, 죽겠다고 하는 자들이 와서 소생하게 하시고, 정신 회복 되게 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회복하고 새 힘 얻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엔학고레\' 은혜의 샘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