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서 은혜의 자리로

고난에서 은혜의 자리로
룻1:19-22





소련의 스탈린 시대 때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소련정부에 체포를 당해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끌려 갔습니다. 마침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집요하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냉담하게 거절했지만 그의 열정적인 전도 끝에 드디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나서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에게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둘째는 자기에게 이처럼 기쁜 소식이었던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도 의사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신실한 그리스도인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 사람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수용소측에서는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 여긴 이 의사는 그를 돕기로 결심하고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한 젊은이를 돕기 위해 수용소 법을 어겼기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큰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 의사는 자기가 수술했던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튿 날 아침에 이 의사는 처형당했습니다. 처형 당하기 직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후회함이 없습니까?』

이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했고,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그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유대인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서 생명을 회생하고, 신앙을 갖게 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이 유대인 의사의 의미깊은 대답을 오늘 우리도 진지하게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아멘하시겠습니까?

인생이 당면하는 모든 상황과 사건 속에서 당신은 정말 후회함이 없는 신앙적 선택과 결심을 하며 살고 계십니까?

나오미와 룻은 결코 후회함이 없는 굳은 결심을 하고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신앙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후회없는 결심이 설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신앙적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베들레헴 땅으로 돌아오는 그들에게는 또 한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고향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이었습니다.

19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될 수 있느냐?\"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어댑니다. 나오미의 꼴이 무엇이냐? 나오미가 알거지가 되어 돌아왔구나? 아마도 십년 전의 나오미는 마차에다가 이삿짐을 가득 실고 의기양양하게 모압 땅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나오미는 헝클어진 머리 위에 보따리 하나만 댕강 이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나오미네 집이 죄값으로 벌을 받았구만!\"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서 \"당신의 고통은 당신이 저지른 죄값이요\"라는 말을 들을 때 일 것입니다.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내심으로는 마치 죄의 대가로써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고난에 대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한 쉽사리 남을 정죄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을 극복하고 대처하는 태도는 좀 달라야 합니다.

\"혹시 이것이 나의 범죄나 불신앙 때문은 아닐까?\"하고 살피는 자세입니다.

모든 고난이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고난은 죄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이런 자세를 취하므로 자신의 고난을 극복합니다.


1. 하나님의 징계를 자신의 죄값으로 인정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의 핀잔과 정죄에 대하여 나오미는 오늘의 불행을 자신의 죄값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기의 이름을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도록 합니다.(20절)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인데 반하여, 마라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하나님께 벌받은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받고 심판받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그녀가 직면하고 있는 어둠과 아픔의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직면이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좀더 적나라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냅니다.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여화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를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자기 가족이 당하게 된 모든 불행과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을 떠난 죄값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망하게 된 것이 아니라, 운이 없어서 화를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빈털털이가 되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자신의 죄값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의 이러한 태도에서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나오미는 모든 잘못과 실수를 인정함에 있어서 완전히 『자존심』을 버립니다.

자기를 더 이상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로 부르라고 말합니다. 옛날 자존심을 완전히 뭉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연단하시는 이유를 정리해 본다면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1)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회개케 하고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2)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함입니다.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신앙과 인격이 자라게 하십니다.

3) 우리의 자아를 죽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당하는 환난과 시련이 죄값이든, 아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의도 중 하나는 자존심을 꺾기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시련과 고난이 많았던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대체적으로 자존심을 꺾기 위해서였습니다.

야곱에게 왜 그처럼 혹독한 시련의 바람이 그치지 않았던가요?

곧 죽어도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자존심을 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뱃 속에서부터 자존심이 굉장히 센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자존심을 꺾고자 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단련하신 것입니다.

욥이 언제까지 혹독한 재앙을 당합니까? 은근히 자기의 순결과 유식함을 내세우는 영적 자존심을 버릴 때까지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일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 자기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직 용기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는 회복되기 시작합니다.』오늘 우리도 자존심을 빨리 꺾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빨리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2) 나오미는 모든 고난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나오미는 동네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대하여 그 모든 책임을 죽은 남편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남편이 이민가자고 했기 때문에, 남편이 기도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남편이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은체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몰아부쳤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시키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오미는 자신의 불신앙, 자신의 불성실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설령 그때 아빠가 가자고 했더라도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만류했더라면 않갔을지도 모를텐데

그때 내가 반대했더라면 상황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태도로 모든 불행과 실패의 원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본문 20절과 21절의 짧은 대답에서 『나』라는 표현을 여덟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합니다.(표준성경. NIV)

『나의 불신앙 때문에, 나의 불순종 때문에, 나의 불성실 때문에, 내 기도가 부족하고, 내 믿음이 연약하고, 내가 판단력이 흐려서, 내가 중심이 곧지 못해서, 내가 미련해서,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에』

모든 화근을 『내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나오미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나오미 : \"내가 오죽 미웠으면 하나님이 벌하시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어떤 시련과 연단을 당하고 계십니까?

누구 때문인 것 같습니까? 누구 탓입니까? 【내 탓이오. 내 탓!】【요, 나 때문입니다.】


다윗은 언제든지 모든 불행과 화근의 원인을 자기 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부덕함 때문이라고 자책합니다.

그래서 그는 쉽게 회개하고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그만큼 빨리 회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차피 내 죄값 때문이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립시다.


2.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며 돌아옵니다.

나오미가 패가망신했어도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굳게 결심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적 확실성 때문입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두 번씩이나 강조합니다.(20,21절)

구약에서 하나님을 『쇠다이』라고 부를 때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빈 손을 다시 풍부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만 돌아오면 모든 것이 풍부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악을 최선으로』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최악의 환경도 최선의 행복으로 바꾸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비록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도, 몸서리치는 고통과 비극의 골짜기에 빠진다할지라도 주님만 의자하고 그분께만 맡긴다면 마침내 나를 최악의 불행에서 건지시고, 최선의 행복으로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나오미와 룻처럼 고난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저와 여러분의 모든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2)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두번씩이나 강조합니다.(21절)

\"하나님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시다\"는 중요한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나오미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돌아오기만 하면 기쁘게 받아주시는 신실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돌아오기만 하면 반갑게 맞이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확신입니다.

나오미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비웃고 비나하고 조롱하고 정죄하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를 기쁘게 받아주시며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모압 여인 룻도 함께 데리고 돌아옵니다.(22절)

이방인까지도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므로 고난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나오미가 이런 믿음으로 돌아왔을 때 베들레헴 땅은 황금빛 풍년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22절)

보리추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달게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룻기 1장 1절은 흉년으로 시작되지만, 22절은 풍년으로 바뀝니다.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떠났을 때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으나,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는 모든 것이 넉넉한 추수의 정경으로 바뀝니다.

빈손들고 돌아온 나오미에게 베들레헴의 황금빛 풍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도 나오미와 룻처럼 황금빛 풍년의 은혜를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모든 자존심을 십자가 밑에 버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을 내 탓으로 여기시십시오.

오직 주님의 은혜만 바라보는 마음으로 빈손들고 예수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마라의 쓴물을 달게하실 것이며, 당신을 고난에서 은혜의 자리로 옮겨주실 것입니다.


≪ 기도초청 ≫ (찬송가 317장, 338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도 오늘 아침 결코 후회없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오미처럼 자존심을 버리는 결단입니다.

나오미처럼 모든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만 바라보므로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결단입니다.

결코 후회없는 결단이 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흉년을 풍년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복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모든 불행의 죄값을 당신에게 돌릴 때 당신이 처해있는 최악의 환경은 최선의 정경으로 바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