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나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수23:1-11 나의 나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수아23:1-11)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6개월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의 6개월 동안도 끊임없는 감사가 계속되길 기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의 생활을 끝내고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도 어언 25년이 흘렀습니다. 메마른 사막의 고통도 이겨냈고, 험악한 가나안 사람들과의 싸움도 훌륭히 치러냈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가나안 땅에서 정착의 틀을 갖춰가며 하나님 주신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어느새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제 인생을 결산해야 할 시간이 임박해 옴을 느끼며 그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백성들에게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설교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3,5,8,10,1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수아는 그가 그 동안 경험했던 하나님, 그 자신을 지배했던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설교를 다시 한 번 돌아보십시다. 첫째 그는 과거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성공리에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의 지도력 때문이었습니다. 즉 가나안 정복 전쟁의 주인공은 여호수아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니라\" 즉 하나님이 모든 일을 배후에서 주도하셨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간섭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간 순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이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하였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지난날은 어떻습니까? 오늘이 있기까지 누가 일하셨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가 이 곳에 세워져 오늘이 있기까지 만드신 분이 누구입니까? 물론 목사도 일했고,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다 일했지만, 우리가 한 것은 따지고 보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싸우셨고 역사하셨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우리 기업이, 나의 나됨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둘째 미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다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정복할 땅이, 무찔러야 할 이방 족속들이 저들의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혹시나 여호수아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되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린 여호수아는 이렇게 저들에게 용기를 주고있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과거에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친히 저들을 쫓아내실 것이며, 너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원리는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시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정을, 기업을, 교회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래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현재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고, 하나님이 지금 너희와 함께 하셔서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편에서 싸우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활동하시며 내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무엇보다도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먼저 점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민족임을 깨우쳐 주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최우선으로 해야 함을 애써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오늘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민족의 지도자로서 마지막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말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나요? 하나님은 없어도 되는데 돈이 없으면 당장 불편하여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게 우리 아닌가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도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여 죽겠다고 하는 게 우리 아닌가요? 교회가 여기 서 있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단순히 착한 사람 만들고, 품위를 지키는 사람 만들고, 복 받는 사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사람,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 늘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구나\"하며 자신을 뒤돌아보며 자아를 깨뜨리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오 주여, 오 하나님이여, 오 아버지여\" 하는 소리가 나고, 흐느끼는 소리가 나야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하고 계신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라. 하나님 앞에 항복하자\"는 것입니다. 아직도 나의 나됨이 나의 실력으로, 나의 지혜로, 나의 능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의 인생에서 알던 모르던 묻어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닦아낸다면 과연 우리의 모습이 어떠할까요? 하나님의 사랑, 길이 참으심, 때를 따라 돕는 은혜, 불쌍히 여기심, 용서하심 등등을 제하여 버리고도 오늘의 모습에 자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정상화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한 복판에 두자는 것입니다. 6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동기요, 원리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빼버리면 신자들은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실천을 위해 얼마나 크게 힘써왔습니까? 사랑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용서하라, 십자가를 져라, 믿고 기도하라, 섬겨라, 봉사하라, 먼저 죽어라 등등의 말씀들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쳤습니까? 여러분 \'후천성 말씀 적용 결핍증\'이라는 병을 아시는 지요? 이 병에 걸리면 약도 없어요. 말씀의 기갈, 말씀의 곤고로 서서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말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들리지 않는 다면, 듣긴 들어도 남의 이야기로만 듣는다면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복 있는 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8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의 친근하다는 말은 적당한 관계가 아닌 꼭 붙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시면서 우리를 가지라 하셨습니다. 가지가 본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과실을 맺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꼭 붙어있어야 함은 살고 죽는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꼭 붙어있을 때 하나님을 닮을 수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과 만나면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사람과 만나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혹은 어머니를 비판하면서 꼭 그렇게 닮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성격의 사람들입니까?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 옆에 있었기 때문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제 여러분 자신들이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여기 계심과 지금 계심을 늘 체험하십시오. 그래서 앞으로 6개월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두려움과 긴장된 마음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가까이 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 바로 \"주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랑의 고백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훈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언제나 체험입니다. 가슴으로 이 사랑이 벅차 오를 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그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질문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빛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도 아무 변명할 것이 없었던 베드로, 차라리 주님이 회초리를 꺾어 오셨다면 오히려 속이 시원할 베드로였는데 터질듯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니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지요.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랑은 이처럼 주를 알고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은 그동안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셨습니까? 끝까지 참아주셨습니다.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잘 지내 왔습니다. 좋은 일들도 많았습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큰 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 황송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나 하는 행동들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넓기 때문입니다. 주지 않으셔도 할 말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미움을 받아도 당연히 여겨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주님이시기에, 이런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들임을 알기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는 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 만큼 살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날마다 감사거리를 주셨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을는지는 모르지만 기쁨을 잃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 대로 복도 받았고 은혜도 받았습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사랑을 입은 것뿐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감사를 마음껏 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이 바로 맥추감사절입니다. 그렇기에 이날은 또한 축복의 날인 것입니다. 이제 6월이 가고 7월이 왔습니다. 앞으로 6개월을 이렇게 살아보십시다. 말씀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 앞에 굴복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 보십시다. 그리고 오늘 최선을 다한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음을 하나님께 강력하게 표현하는 날이 되도록 하십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은 언제나 승리의 삶이요, 기쁨이 넘치는 삶이요, 주의 영광이 빛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결단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