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자/히12:25-29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5-29>
우리 기독교를 일컬어 은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또 기동하며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은혜라는 말이 영어의 Grace란 말이 희랍 원어에 카리스라는 말인데 일반적 의미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워, 즉 진선미에 매료되다. 호감이 간다, 사귀고 싶다, 좋아 보인다, 기쁘다, 즐겁다, 아름답고 멋있다 하는 이런 일반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 모든 피조물이 너무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합니다. 그래서 자연은 정직하고 자연은 진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일반적 은혜, 혹은 자연적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일반적 은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공급해 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일반적 은혜는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니 의식주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맑은 공기, 맑은 물, 비옥한 땅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3:3절 말씀에 보면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하였으며, 전도서 9:9절 말씀에 보면 해아래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고 선물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런 일반 가정생활까지도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 은혜를 가지고는 사람이 죄에서 해방을 받거나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서 영생 얻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죄악을 죄없는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시키셨으니 이것을 가리켜 대속의 은혜라고 말하고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구원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무 육체라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공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된 것이니 우리 평생 자랑은 십자가 밖에는 없는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17절에 율법은 모세로부터 온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미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자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해방이 되었으니 그것은 어린양의 피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사람이 소수였다면 광야에서 은혜생활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죄악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또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니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이라도 죄악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또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니 이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는 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일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일이 계속 이어짐으로써 승리생활을 위하여 은혜를 받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밝혔으니 첫째는 하늘로 좇아 경고한 자를 배반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25절에 땅에서 경고한 자를 피하지 못하였거늘 여기서 땅에서 경고한 자는 땅에서 난 모세의 경고를 듣고도 무시하여 광야에서 망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물며 하늘에서 오신 분의 경고를 무시하고야 어찌 심판을 면하리요. 하늘에서 오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야 어찌 심판을 면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자 라고 했습니다.
두번째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정체된 상태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나 광야에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받은 은혜를 계속 이어서 은혜생활 하지 못하고 광야생활이 좀 힘들다, 어렵다 하여 모세 원망하고 하나님 의심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꿈을 접어 버리고 다시 애굽을 생각했을 때 광야에서 망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되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정체된 상태에서 발전해야 된다. 그런 의미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세번째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는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28절에 보면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은혜를 받아야 경건한 자가 되고 은혜를 받아야 거룩한 자가 되고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기 전에 베드로는 그 장담함이 몇 시간도 못 가서 무너집니다. 여러분, 인간이 주의 뜻대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각오하는 것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만 그때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경건하다는 말은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은혜 체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두려움을 전혀 못 느낍니다. 어린 아이가 철이 없을 때는 부모님이 두려운 줄 전혀 모르다가 어느 정도 철이 들면 부모님 무서운 것을 그때 압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갈등도 없습니다. 그래도 은혜체험을 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고통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벧전 1: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눅 1:50절에 긍휼하심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고 도와주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출 18장에 보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울 때 그 자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살아 계심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을 갖게 되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심판이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성령이 충만해지게 되면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있는 곳에 희락이 있고 희락이 있는 곳에는 화평이 있고, 화평이 있는 곳에 오래 참음이 있고, 오래 참음이 있는 곳에 자비가 있고, 양선이 있고, 충성이 있고, 온유와 절제가 있으니 이를 가리켜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고엽나무에서 감나무로 바꾸어져야 감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죄인이 은혜로 새로워져서 의인으로 바꾸어졌을 때 의인의 열매를 맺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은혜를 받고 난 이후에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를 지으면 다시 곤고함이 찾아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5장과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8년 동안 병상에서 고통 당하던 한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성전에서 만나서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끌려 왔습니다. 주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당부한 말씀은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고도 죄를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을 뿐 아니라 죄가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막 9:42절 이하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지움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려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다 그랬습니다.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려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만일 네 눈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려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덩이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아야만 죄악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그래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되면 어떤 일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겠습니까? 다섯 가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은혜 받으면 첫째, 마음이 평안합니다. 악한 죄 파도가 많아도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은혜 받으면 하나님의 성령은 평화의 신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사도행전 12장에 보니 깊은 잠에 빠졌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야지 단잠에 빠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면 정서적 안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에 실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하면 사고납니다. 불안과 공포와 스트레스에 계속 싸여 살면 온갖 신경성 질환을 홀로 다 앓습니다. 심장병, 신경성 위장병, 신경성 류마치스,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은 만가지 병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모든 병이 떠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근심과 걱정, 불안으로 어두워지면 이 마귀의 색깔이 어두움이기 때문에 어두움을 틈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미운 감정, 그리고 시기, 질투, 원망, 불평,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도 죽고 싶은 마음을 마귀가 줍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나 자살은 다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를 받고 평화를 누려야 되고 두번째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기쁩니다. 그래서 이 은혜라는 말은 영어에 Joy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쁘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5:10절 이하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함같이 너희도 내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은 세상에서 얻은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얻은 기쁨은 무슨 냉수를 얻어먹는 것 같은 기쁨이라면 주님이 주신 기쁨은 냉수를 한 그릇 얻어먹은 기쁨이 아니라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이니 다함이 없는 기쁨인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이 언제 오느냐면 그 날에 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요 16:22절 이하에서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니 구하라.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 날에, 그 날이 언제 입니까? 오순절 날입니다. 구하라, 무엇을 구하라는 말입니까? 성령을 구하라. 받으리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은혜 받고 기쁘면 이 환경을 초월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서 3:17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 믿고 은혜 받았다, 부자 되었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영적인 부요, 마음의 기쁨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은혜 받으면 어떤 일이 우리 속에 있어지는가? 주님을 진정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면 그 사랑의 감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이 만들어가면서 살도록 우리 인간을 지었습니다. 피차 사랑하다보면 거기 사랑의 감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잠언서 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확증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바람을 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같고 성령님도 바람과 같으니 성령님을 본 자도, 하나님을 본 자도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이 함께 한 증거, 그것은 능력이요, 지혜요, 은혜 충만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충만 받으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 법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우선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서 속한 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청소년시절에 하나님을 만났고 은혜 받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내려준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그것은 우상 앞에 제사를 지내고 물러난 음식이기 때문에 몸을 더럽힐 수 없다 하여, 하나님 법을 지키기 위하여 거절했습니다. 왕명을 거절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은혜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은혜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한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을 최상으로 높여드리면 주님 높이고 살아가는 사람 주님 또한 높여 주실 것이니 이것이 놀라운 비밀입니다.
기독교 문화가 정착한 미국 사회에서는 법으로 정한 것은 누구나 지키도록 합니다. 지난 5월16일날 텍사스 주의 오스틴 법정에 부시대통령의 딸 레나양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판사로부터 8시간동안 사회 봉사활동 하시오. 6시간동안 음주교육을 받으시오. 그랬습니다. 미국에는 21세미만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합니다. 그런데 레나양은 19살 먹었는데 한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복경찰관에게 적발되어 고소당했습니다. 그대로 지켰습니다. 대통령의 딸도 8시간 동안 사회봉사 명령을 준행했고 6시간동안 음주교육을 받았습니다. 준법정신, 그것이 미국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위에 기독교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법을 지키고 그리고 모든 문화를 기독교문화 쪽으로 조성해가는 그런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고도 죄를 범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입으로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언하고 병고침받은 것만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보면 열매를 압니다. 봉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은혜 받았구나. 증거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은혜 받았고 연보하는 것을 바라보니 은혜 받았고, 남 섬기는 모습, 겸손한 모습을 바라보니 은혜 받았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들이 하나님 보시기도 아름답지만 교인들도 존경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존경하고 봉사 많이 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갖습니다. 여러분,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은혜를 이제 받아야 되는데 또 은혜를 받으면 우리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네 번째는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여러분,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평강에서 평강을 더해준다고 했습니다. 팔려간 당나귀처럼 누가 무슨 말하면 이렇게 치우치고 저렇게 치우치고 자기 주관을 잃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은 평강이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길을 가리라, 구원의 길, 승리의 길, 복된 길, 영생의 길, 비록 길이 협착하고 좁지만 십자가가 힘들고 어렵지만 이 길만이 사는 길이니 나는 이 길로 가리라. 뜻을 정하고 변함이 없는 심지가 견고한 은혜는 하나님의 성령에 붙들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히 13:9절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잠언 4: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너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을 알라. 세상을 누가 이길 수 있느뇨. 믿음의 사람이 아니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뇨.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속사람이 강건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비록 육신의 나이 많아서 노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언제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젊게 살 수 있는 것이니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은혜를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주님이 시키는 일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일꾼으로 자원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은혜를 받더니 주여, 나를 일꾼으로 들어 쓰시옵소서 하고 자원하여 나섰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일합니다. 그러므로 일하라고 권하기 전에 은혜 받으라고 먼저 권해야 합니다. 노아를 통해서 주님은 새역사를 전개해 갑니다. 120년 후가 되면 이 땅에 무서운 홍수 심판이 있게 될 것이니 너는 네 가족과 함께 아라랏산으로 올라가서 삼층으로 배를 지어라. 잣나무로 지어라. 그때에 노아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래서 홍수가 날 때에 가족이 다 들어가서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그에게 하나님이 큰 일을 시키기 전에 창 6:8절 말씀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렇습니다. 일 시키기 전에 은혜부터 주셨습니다. 은혜 받기 전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돌로매, 마태, 모두 다 두려워 떨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더니 전도했습니다. 은혜 받더니 십자가 졌습니다. 은혜 받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고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고 은혜 받으면 옆의 사람도 함께 즐거워하고 본인도 좋아지니 은혜 받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으면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은 은혜와 정비례합니다. 은혜를 조금 받은 사람에게 많은 일을 맡기면 힘들고 시험만 들고 은혜 많이 받은 사람에게 작은 일을 맡기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 9: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 은혜를 넘치게 준 것은 하나님의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은혜는 곧 하나님의 일과 정비례된다. 은혜 많이 받으면 많은 일 하고 크게 은혜 받은 사람은 큰 일한다. 그래서 여러분, 은혜 받는 것을 항상 일순위에 두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에게 은혜 베푸실까요? 아무에게나 은혜 베푼다는 말이 성경에 없습니다. 출 33:19절에 보면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나 은혜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어떤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요?
첫째,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 베풀어주십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 배고픈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주십니다. 시 107:9절에 여호와는 사모하는 자의 영혼을 만족케 한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욥기서 33:26절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푼다 하였고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받으리니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성경에 기도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눅 11:11-13절에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하면 주십니다. 다니엘이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장 가브리엘이 날아와서 은혜를 크게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이제 날이 이르면 이 민족이 해방되리라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 번째는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살전 2:13절 이하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듣는 자 마음속에 능력으로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게 되고 감동을 받게 되면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 전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 다 불러 모아놓고 부흥집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강사님 베드로가 왔을 때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다.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성령이 임하니 방언이 터지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면 응답을 받게 되고 말씀을 가지고 대적하면 마귀가 물러가는 것이니 말씀을 떠난 은혜는 없습니다. 오늘밤부터 시작하는 부흥회의 강사님이 말씀의 보따리를 풀을 때에 여러분이 그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받아들이면 고넬료 가정에 임했던 그런 성령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될까? 성령의 감동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갈 5:16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두 마음이 우리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부흥회를 참석할 것인가, 말 것인가, 새벽기도를 나올 것인가, 말 것인가, 연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성령의 소욕이 있는가 하면 육체의 소욕이 있어 두 마음이 나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순종하면 은혜를 받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전진해 갈 것인가, 애굽으로 내려갈 것인가, 가나안으로 전진하라는 것은 성령의 소욕이었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육체의 소욕이었으니 육체의 소욕을 선택했던 사람은 광야에서 망했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이 약속한 목표를 향해서 전진한 사람들은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감동이 오거든 순종하고 그 길로 나아가십시오. 반드시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천국을 주님은 한 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장을 발부했습니다. 날이 되어서 종들을 보냈더니 한 사람은 이렇게 핑계합니다. 죄송해요. 내가 밭을 샀거든요. 그래서 내가 둘러보러 가야겠네요. 두 번째 사람, 죄송해요. 저는 소 다섯 겨리를 샀거든요. 길 좀 들여야 되겠거든요. 또 한 사람은 내가 장가들었거든요. 신혼여행 가야 되거든요. 죄송해요. 다 핑계하고 오지 않습니다. 임금이 화가 났습니다. 그 사람을 내버려두고 저 길에 나가서 절뚝발이, 병신, 가난한 사람들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왔습니다. 자리가 아직도 남았습니다. 이제는 산울가로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데려 오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초청을 받고도 거절하는 사람은 언젠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서 이를 갈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초대를 받은 사람은 임금이 배설한 자리에 함께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천국은 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는 것은 천국잔치를 배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천하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은혜 받을 때 은혜 받아야 합니다. 복을 받을 때 복을 받아야 합니다. 에서는 현실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래서 한 그릇의 팥죽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알고 축복권을 우습게 알더니 평생 눈물을 흘리고 축복을 기업으로 받고자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면 야곱은 기회주의자,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축복에 대한 열망,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복받고 싶은 열망, 그래서 기회를 포착하고 장자의 명분을 사고 그리고 축복기도를 받는데 열심을 냈던 야곱을 하나님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은혜 사모하고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기회를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조심해야 되는데 육신의 소욕을 단호히 물리치십시오. 은혜 받을 때에는 은혜 받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게으름을 버리십시오. 나는 이만하면 됐다는 교만을 버리십시오. 세상에 은혜를 다 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은혜라고 하는 것은 받을 수록 더욱 사모하게 되고 더욱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여러 번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지만 이번 부흥회는 여러분 큰 기대를 한번 가지시고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후 6:2절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때를 따라 은혜를 주셨는데 아침 새벽에 내리는 은혜가 있었고 낮에 내리는 은혜가 따로 있었으며 밤에 주신 은혜가 따로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만나라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새벽에 홍해를 갈라놓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이 새벽시간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은혜를 베풀어 보호해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은혜 받을 때에 은혜 받으면 그의 가는 길이 형통할 것이며 종착역 가나안에 이르게 될 것이니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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