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승리를 얻기까지/히12:1-3
며칠 전,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국제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나라의 이봉주 선수가 2위를 했습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을 만회하기 위해 두 달만에 도전한 대회라서 많은 우려를 했는데, 보란 듯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마라톤 중계방송을 볼 때마다 저는 우리의 삶이 바로 마라톤 경기와 같다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4에서 \"인생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도 인생을 경주로 규정하고 최후의 승리자로 어떻게 설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가 발견한 원리를 통해서 신앙의 경주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교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지난 시드니 올림픽에서 많은 신기록을 작성한 종목이 있는데 바로 수영이었습니다. 이렇게 수영 종목에서 수많은 신기록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새롭게 개발된 수영복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이 견해입니다.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새로 개발된 이 수영복은 사람의 벗은 몸보다도 물살의 저항을 더 적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영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이 경기하기에 효율적인 운동기구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회사들이 수십 억 원의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달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없애는 것은 운동선수들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경주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앞으로 달려가는데 방해가 되고 저항을 일으키는 모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안고 태어납니다. 사탄이 뿌려놓은 죄악의 싹이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와 더럽고 추악한 일들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죄악으로부터 생산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한 생각,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부모거역, 우매함, 배약, 무자비함....\" 이 세상을 눈 씻고 쳐다보아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바로 인간의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온전한 신앙의 경주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모든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더 이상 죄를 끌어안고 살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자유함을 얻었지만 아직까지도 세상은 구원받지 못했으며, 세상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입을 크게 벌리고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원수 마귀의 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음란, 유흥, 사치, 향락, 술 취함, 방탕함, 마약, 도박, 도적질 등.., 세상적인 나쁜 습관들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것 등,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숙된 자세가 아닌 것들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우리들을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참 신앙의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고 저항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벗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인내로서 경주하며
제가 마라톤 경주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라톤을 완주한 자들에게는 그 순위와 관계없이 국제적인 인증서가 발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경주에는 등위를 가리는 시상대가 없습니다. 끝까지 달리는 사람은 누구나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완주자에게 똑같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게 됩니다.
42.195km를 뛰는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력입니다. 체력도, 스피드도, 컨디션도 모두 중요한 요소지만 무엇보다도 인내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라톤입니다. 100m 달리기는 스타트와 스피드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기 위해 얼마나 긴장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처음 출발이 좋았다고 결과도 반드시 좋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스피드가 빠르다고 그 인생이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끝까지 완주했을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래 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인내력이 없습니다. 참지 못합니다. 오히려 먼길을 걸어다니던 때에가 여유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약속을 더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초 스피드시대입니다. 자동차가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도 아주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은 더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패스트푸드 시대입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빨리 되는 시대입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수퍼에 가면 얼마든지 쌓여 있습니다.
컴퓨터도 처리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기다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빠르고 쉬운 것들을 만들어 내놓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초스피드 시대에도 인내력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상품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실용화된 제품이 되어 나오기까지는 돈과, 시간과 밤잠을 설쳐가며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인고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환도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밤새 천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끈질긴 열정, 똥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질긴 간구, 불의한 재판관에게 멸시를 받으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탄원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었던 가난한 과부처럼, 눈물과 땀, 그리고 피 흘리는 열정이 있어야 신앙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끝장을 보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매달려야 합니다. 한두 번 기도해보고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심판을 막아보기 위해 끈질기게 하나님의 뜻을 묻던 것과 같은 끈기가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해도 끝장을 볼 때까지 합시다. 지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부르던 사람들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며 그의 영혼이 구원받기까지 만날 때마다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도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금주부터 성경 읽기 대 행진을 시작합니다. 텔레비전 끄기 운동과 더불어 성경 읽기에 돌입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꼭 한번 완독하고 말리라는 다부진 결심으로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꼭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왕에 시작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권사로 장로로 하나님 앞에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교회를 자주 옮기는 사람들, 물론 직장 관계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기분에 따라서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은 그 신앙이 자라지 않을뿐더러 큰 일에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송악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은 이곳에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고 신앙의 경주에도 승리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목표
가끔 목회자들끼리 모이면 작은 운동회가 벌어집니다. 그 중에 가장 하기 쉬운 운동이 족구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끼리도 그냥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음료수라도 내기를 하면 아주 서로 이기려고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운동경기가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경주하는 사람의 가장 큰 기쁨은 승리라고 하는 목표점에 완주한 후에 상급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표 없이 달리는 경주일 것입니다. 승리를 해도 상이 없다면 그것은 경주라기보다는 지루하고 힘든 노동이 될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달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목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목표, 우리 신앙의 목표로 정하고 달릴 때, 우리의 경주는 끝까지 완주하고 하늘의 큰 상급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까? 예수님이 신앙의 목표가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이라\"고 한 말씀처럼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또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하실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목표점이 흔들리면 달리는 사람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의 축복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의 기대도 변함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셨고, 또 승리의 면류관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영광의 보좌를 다 벗어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바로 성도들의 마지막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시작되기 전,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선배들이 핍박과 함께 닥쳐오는 달콤한 유혹들 앞에서 변하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신앙을 지키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게으름이 적이요, 세상의 즐거움이 적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로 믿음이냐 죽음이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하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지키려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하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신앙을 선택해야 한다면 양을 탈을 씌워 사자 굴에 던져지거나, 산채로 십자가에 묶여 야간 경기장의 횃불로 타오르는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런 형벌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도 그 입에는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사자들에게 찢기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8절에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치 못하도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입니까?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 도대체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것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천국의 커튼을 잠깐 열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커튼을 살짝 열고 하늘 나라의 모습과 장차 일어날 마지막 때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묵시록입니다. 7장입니다. 9절부터 읽습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핍박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 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는 이와 같은 허다한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남긴 믿음의 발자취가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빛나는 면류관이 우리들에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평생 교회를 다니고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벌써 2000년의 12월이 되어 중반을 달리고 있지만 우리들의 인생의 경주, 신앙의 경주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의 경주를 모두 마친 후에, 예수님처럼,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서 흰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아름다운 신앙의 선배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최후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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