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고지를 향하여

승리의 고지를 향하여/히12:1-13

승리의 고지를 향하여/히12:1-13



지금 전국은 지난 14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48년 만에 처음으로 16강에 오른 축구이야기로 날이 가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열광하는 모습은 아마 8.15 해방이후에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승리가 이처럼 좋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경제학자들은 월드컵 16강 진출로 인하여 약 16조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며,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이 대단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히딩크 감독과 대표선수들은 국민의 영웅이 되었고 명예와 상급을 푸짐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나라의 선수들은 마치 무슨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고개를 떨구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축구 경기에서의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면 우리의 영적 경주에서 승리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의 차이는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은 각종 면류관을 얻고 칭찬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믿음의 패배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의 승자와 패자의 명암(明暗)이 이렇게 분명하다면 하늘나라에서의 승자와 패자의 대우는 얼마나 더 분명하겠습니까? 세상의 승리는 잠시잠깐이지만 우리의 영적 경주에서의 승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 경주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승리했다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나 민족에게 큰 명예가 되고 영광이 되는 것처럼 성도들 하나 하나의 영적 승리는 나 자신과 가족과 몸 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큰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5)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영적 장애물을 제거하라

경주를 하는 자는 경주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니폼과 도구만을 지녀야 경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육상이나 수영, 배구 선수들은 아주 간편한 복장만으로 경기에 임하는데 이는 몸을 가볍게 하여 경기에서 이기고자 함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사울 왕이 다윗을 기특하게 여겨 왕의 갑옷과 투구와 칼을 건네 주며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갑옷을 입어본 다윗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여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갑옷과 투구와 칼로 무장하고 전쟁에 나간다는 것이 그 나라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일이었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을 벗어놓고 평상시 자신이 입었던 목동의 옷차림에 꼭 필요한 물매와 매끄러운 돌과 막대기만을 가지고 골리앗과의 싸움에 임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경주에서도 경주를 가로막는 것은 모두 벗어버려야 하는데, 본문에서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경주에 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1) 무거운 짐
첫째,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 있는 이상 영적 경주에서 잘 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 38:4)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죄의 무거운 짐을 벗고 가볍게 경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길은 오직 “회개”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므로 우리의 무거운 짐이 벗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가볍습니까?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영적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삶의 무거운 짐입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우리의 삶 속에서 생기는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염려 등을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으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 할지로다”(시 68:19)라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들이 삶의 무거운 짐을 매일 주님께 맡길 때 가벼운 마음으로 영적 경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삶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고 말씀하시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 우리들 삶의 무거운 짐을 모두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가볍게 영적 경주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자매님이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다섯 남매를 혼자 키우며 공부시키느라고 곤고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신실한 분이었는데 그 자매님이 앉아 예배를 드리고 간 자리는 항상 종이쪽지로 지저분하였습니다. 이것을 늘 이상하게 여기시던 목사님께서 몇 달을 지켜봐도 여전히 예배드린 그 자리가 늘 지저분하자 하루는 그 자매님을 불러 자초지종을 말씀하시면서 예배드린 후 돌아갈 때는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자매님이 목사님께 자기가 앉았던 자리가 종이쪽지로 지저분한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인즉, “목사님, 저 혼자 다섯 남매를 공부시키며 생활하려니까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생활하면서 제 삶의 무거운 짐을 종이쪽지에 하나 하나 적어 와서 예배를 마친 후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시는 주님께 저의 짐을 맡기고 가느라고 그 종이쪽지를 예배드린 자리에 놓고 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다 들은 목사님께서는 삶 속에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매님의 믿음을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무거운 짐 때문에 숨조차 쉬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는데 이런 무거운 짐은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할 때 믿음의 경주를 올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얽매이기 쉬운 죄
얽매이기 쉬운 죄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전심전력하지 못하도록 시간과 정열을 분산시키는 일들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8-19)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세상일에 너무 얽매여 있어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세상의 지위와 부와 명예를 좇고 동창회나 취미생활 등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온전히 주님을 좇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얽매이는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을 과감히 떨쳐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감독인 히딩크 감독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가 국가대표 선수를 뽑을 때 얽매이기 쉬운 학연, 지연, 과거의 전력 등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선수들의 실력만 보고 대표를 선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력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감독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열심히 훈련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선수들만 뽑았다고 합니다. 개인주의는 전체를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얽매이기 쉬운 조건들을 모두 배제하고 선발한 선수들만 데리고 자신이 의도한대로 훈련을 시키고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도록 함으로써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경주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짐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온전히 그리스도를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2. 분명한 목표를 가져라

우리의 목표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달려가신 길이 우리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달려가신 그 길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고 믿음의 성공을 이루신 길이기에 우리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삶의 목표로 삼고 닮아가야 할까요?

1)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아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조차 황송한데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천대를 받으셨습니까? 그래도 낮아지셔서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하시고 죽기까지 그들을 섬기며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을 따를 때 이런 겸손을 닮아야 합니다.

2)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세상에서 권세 있고 높은 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분이시지만 가난하고 병든 자, 고난받는 자들을 돌보시며 그들과 함께 하시고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들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 소외되고 갇힌 자들을 돌아보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으므로 소망과 치료와 자유함을 얻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나오시던 집사님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부인에게 자신의 유산 중에서 절반은 교회에 헌금으로 드리고 남은 유산의 일부는 평소에 돌보던 고아원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부인 되시는 집사님께서는 유언대로 행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크리스챤들은 항상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 참으심을 닮아야 한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절)는 말씀에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십자가 후에 십자가로 말미암아 일어날 효력에 대하여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기적인 기쁨이 아니라 그 고난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들의 구원이 완성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영적 경주를 할 때 앞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0-11)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주님 영혼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대단히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형벌은 죄인을 발가벗겨 높은 장대에 달아 죽이는 것인데 이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참고 견디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살인자나 강도 같은 흉악범이 달리는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데 이것이 주님께 합당한 대우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히려 어린양같이 조용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애쓰다가 고난받고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라는 말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죄인들을 위해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구원받았으니 이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이러한 주님의 사역은 결과적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님의 겸손을 본받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지라도 인내하며 항상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려고 애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축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생애가 의로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십자가의 공로가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생애는 하나님께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을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볼 때는 참으로 비참하고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스데반은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님께서 서서 스데반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 후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담대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내로 경주하라

경주에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힘써 경주를 하다가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본문은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3절)고 하면서 인내로 경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경주를 할 때 무엇을 인내해야 할까요?

1) 주님을 따를 때 오는 핍박과 고난을 인내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에 굳게 서서 세상과 타협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크리스챤들은 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며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핍박과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은 선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징계를 인내해야 한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5-6절)고 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잘못하였을 때 돌이키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를 연단 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鍊達)한 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국가대표 축구감독인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에게 강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외국선수들에 비해 다리가 짧고 체력도 약한 우리 선수들이 무슨 방법으로 외국선수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히딩크 감독은 전, 후반 90분을 모두 뛸 수 있는 강한 체력의 선수들로 만들기 위하여 강 훈련을 시켰던 것입니다.
‘지옥훈련’이라고 불릴 정도의 이 강 훈련을 받으면서 선수들은 감독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이 훈련을 시킨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훈련을 통하여 자신들이 강하여 지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모진 훈련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강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이 불같은 시험과 환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3) 나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인내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대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인인 우리들에 대해서도 참으셨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관원들이나 로마병정들에게까지도 참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주님을 닮아간다고 하면서도 우리를 비난하고 반대하며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악한 마귀와 싸울 수 있는 튼튼한 십자가의 군병으로 만드시고자 징계와 연단과 훈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훈련을 달게 받아 십자가의 강한 군병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길은 오직 인내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욥의 인내를 비롯한 많은 믿음의 열조들의 인내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은 쉽게 받지만 그 구원을 온전히 이루는 데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 앞에 달음질하여 도달할 때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4. 경주자에 대한 격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1절)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3절).
우리들은 경주를 하다가 낙심하고 절망하여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를 본문에서는 “저는 다리”라고 하면서 어그러지지 않도록 고침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은,

첫째, 신앙의 경주는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이미 그 길을 달려갔으며 우리 뒤에 있는 사람들이 또 그 믿음의 경주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우리 앞에 달려가 인내함으로 믿음을 지킨 많은 열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달려간 그 길을 나도 달려가는 것이므로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참고 견디면 믿음의 열조들이 최후에 승리한 것같이 나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내가 승리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선수단은 열 두 명이 싸웠다고 합니다. 열 한 명의 선수는 운동장 안에서 열심히 뛰었고, 운동장 밖에서는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열렬히 응원하므로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보좌 옆에 앉아 있는 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우리들도 승리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와 같이 많은 믿음의 열조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기에 이 믿음의 경주는 나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적극적이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경주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들도 주님께서 받으신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대표 축구팀이 건국이래 처음으로 16강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8강, 4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벌써 우승컵을 안은 것처럼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승리가 이렇게 기쁘다면, 우리 일생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나아가 바울 사도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노라”(딤후 4:7-8)는 승리의 외침을 할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나라 축구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히딩크라는 명감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수를 선발해내는 안목과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지도력 그리고 경기를 진행하는 전략과 용맹성, 추진력 등이 감독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받은 처음부터 명감독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국가대표팀을 맡은 후에도 우리 선수들이 외국팀과의 경기에서 번번이 졌기 때문에 그는 많은 비난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인내하며 선수들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실력이 향상되어 16강에도 진출하고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 전투에서의 명감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감독 되시는 주님의 지휘와 훈련을 잘 받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음질하면 우리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에 넉넉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승리는 곧 온 교회의 승리이며 나아가 전체 기독교의 승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으셔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의 면류관을 모두 받아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