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 승리

최종적 승리/마21:1-11

최종적 승리
마21:1-11





역사가 토인비는 역사에 대 한 많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3 가지로 나누어서 비유로 말해주었습 니다. 먼저 모든 사람은 한 배에 타 고,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전제해 놓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무리의 사람들은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배 안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편히 쉬고, 즐기는 것. 여기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것이 많으면, 기뻐하 고, 행복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주면, 불평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기들의 요구가 그 배 안에서 이루워지지 않으면, 그때는 참 많은 원망과 그리고 또한 여러 가지 불평 을 늘어놓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역시 이 배가 어디 로 가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배의 주변으로 보이는 경관들, 아름 다운 산, 그리고 새들, 파도의 여러 가지 모습들,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 좋아합니다. 그저 날씨만 화창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도대체 항해가 잘 되는지, 못되는 지에는 관심이 없습 니다. 자기들이 주변을 즐기는 이 일만 이루워지면, 전혀 아무 불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사람들 은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 습니다. 최종적으로 닿아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항해해야 할 거리 를 그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항해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노를 젓고 있고, 그리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목적지에 정한 시간에 가 닿아야 하 는 고민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지 키고 있습니다. 이 종려주일은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 근거하여 지 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최종 목표점을 향하여 나가시고 계십니 다. 바로 예루살렘에 서 있는 십자 가를 향하여 나가시고 계시는 것입 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 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 는 목표는 각각 다른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눈앞에 있는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지만, 함께 따르는 무리들의 생각은 전혀 예수님의 뜻과 달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칭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 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우리 역시, 최종적으로 닿아야 할 곳이 어디인 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고민이 우리에게 도 있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세상 사람과 같은 고민이 아닙니다. 그리 스도인만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 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인가? 물론 우리는 경제, 사 회, 문화, 이러한 부분의 고민을 하 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리스도 인은 그리스도인다운 고민을 따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 고 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첫 번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하 는 것을 알기 위하여 고민하는 것입 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시겠지요.

\'성 경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다 기록 되어져 있지 않는가! 어느 그리스도 인이 하나님의 뜻이 몰라서 고민하 겠는가?\' 여러분, 우리의 고민은 구 체적인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는 아 는 이 추상적인 뜻을 구체적으로 생 활 속으로 적용하는 고민이 있는 것 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이 길을 가 야하느냐, 가지 말아야 하느냐? 혹 은 이 일을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 야 하느냐? 또 이것을 선택해야 하 는냐, 포기해야 하느냐? 우리에게 이러한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고민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나 에게 불이익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의 뜻대로 하면, 나에게 큰 손 실이 오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입니 다. 내가 유익을 취하자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리스도인에게 큰 고민입니까? 또 하 나의 고민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는 아는데

, 이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 길 로 걸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죠. \'좁은 길로 걸어가라.\' 여러분, 좁은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의 고민이 많습니다. 오 늘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분된 사람들이라고 말하 지만, 과연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 람의 수효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하나님의 뜻대 로 살면, 이 모든 복된 일들이 이루 워졌으면, 좋겠는데 어렵게 선택하 고 힘겹게 걸어왔지만, 어떤 때 그 결과는 내가 바라는 것은 전혀 성취 되지 않는다는 여기에 우리의 고민 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제자를 부르셨 습니다. \'베다니에 그 건너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몰고 오너라.\' 그 러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나귀 새끼인가! 그것은 구약성경 스 가랴 9장 9절 말씀에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 도록 예언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5절 말씀에 보면,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 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 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 라.\' 이 말씀이 바로 스가랴 9장 9절 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 의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이 예루살 렘으로 입성을 하는데 에는 왕의 행 차에 모든 것들을 다 채비를 차려서 드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왕이 타는 말은 다릅니다. 백마를 탑니다. 백마는 힘의 상징이요, 권위 의 상징입니다. 왕의 품위가 탄 말 에 의해서 규명되기도 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백마를 타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아무도 타지 않 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날 오래 목회 를 덕스럽게 하신 원로 목사님을 모 시고, 후배 목사님들이 모여서 \'목사 님, 평생 목사님으로 일하셨으니 우 리에게 중요한 말씀, 한 마디만 남 겨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면 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목 사란, 돈 버는 일을 해서는 안되지. 목사는 입을 것, 먹을 것, 그리고 구 제할 것만 있으면 되지. 나는 목회 할 때, 늘 부족하다고 느꼈지. 그러 나 막상 목회를 다 끝난 연후, 지금 주님이 부르심을 받을 날이 다가오 는 현재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 가 부족했던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만족하게 주신 것들이야.\'하는 것입 니다. 여러분, 목사만 돈 벌어서 안 됩니까? 여러분은 돈 벌면 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돈 버는 사람들이 아니올시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올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업을 하여도, 하 나님을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그리 스도인은 직장 생활을 해도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한 방편으로, 그리스도 인은 자녀를 양육해도 하나님의 사 람 만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노 동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 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 벌기 위해 서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젊은이들이 \'기 독교 정신으로 기업을 만들어보자.\' 하면서 \'호산나\'라는 이름을 짓고, 기업을 설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설립하면서, 첫 번째 조건이 뭐냐, \'주식은 각각 사야 기업이 되 잖아요. 그 주식을 산 연후에 그 주 식을 자녀에게 혹은 아내에게 절대 적으로 양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산으로 줄 수도 없다. 또, 친척이 나 혹은 자기와 연관관계가 있는 사 람에게 양도할 수 없다. 이 주식은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공동 으로 분배해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주식을 사는 이유는 오 직 이 기업에 투자에 목적이 있지. 주권에 목적이 있어 주식을 사는 것 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 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업을 시 작했습니까?

얼마 전에 다 아시다시피 H그룹의 왕회장이 자기의 자녀들에 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모습을 보았 습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저 미개인들이 하는 혈통적으로 공기업 의 경영권을 이양하는가? \'부끄럽다. 아직도 저런 기업이 존립하다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 러분들도 기업 하시면 그렇게 하시 렵니까? 주님께서 공생애 3년을 시 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기도를 시 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성령 의 이끌림 받아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러 가셨습니다. 이 때, 마귀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돌들이 떡되게 하라.\' 주님은 말씀하 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랬습니다. 떡이 필요 없다 가 아닙니다. 떡이 필요합니다. 그러 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 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떡이 어야지. 결코 경제, 잘 사는 것, 그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님은 오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 면서 그 당시보다 더 큰 시험을 치 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왕이라 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나 는 평화의 왕, 겸손한 왕이라는 것 을 알려야 한다. 그러자 하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해 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를 힘으로 정 복한 알렉산더는 이 길로 예루살렘 을 입성할 때, 백마를 타고,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의 제사장 이나 여러 정치적 지도자와 권력가 들이 다 나와서 알렉산더 앞에 굴복 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행 차하시면서 가장 중히 했던 것은 하 나님께서 원하시던 바가 무엇인가, 성경대로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입니 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이 중시 여 겼던 것은 깨끗한 성결한 것을 탄다 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삼상 6장 7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법궤를 태울 수레는 한번 도 사용되어 본 적이 없는 수레이어 야 한다.\' 그랬습니다. 또한 민수기 19장 2절 말씀에 보면, \'결례식에 사 용되는 붉은 암송아지는 아직 멍에 를 매지 아니한 것으로 해야 한다.\'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언젠가 어린 아이를 옆에 세우시고 \'천국의 들어 가자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 그 랬습니다. 주님이 중시여기는 것은 성결한 것이었습니다. 깨끗한 것이 었습니다. 그것이면 만족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숫자는 주석가 바클레이에 의하 면, 약 25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예 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30Km안에 있는 남자 모두는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월절 절기를 보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수 많은 군중이 함께 예수님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 데 그 함께 가고 있는 사람들의 대 화는 이것입니다. \'저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예수라는 청년이 있었어. 그 청년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야. 그 분은 죽은 자를 살게 하고, 오병이 어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고, 바다 를 잔잔케 하고, 문둥병자를 낫게 하며, 귀신 들린 자를 깨끗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만약 그 분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 엘의 왕이 된다면, 우리는 유토피아 가 이루어 질 수가 있을 거야. 다윗 이 통치하던 그 때처럼 영광을 되찾 을 수 있을 거야.\'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의 대화의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하고, 걸어가는 중에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 젊은 예수가 우리와 함께 예루살 렘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 을 듣자, 그들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호산나\' 요즘 말로 말하면, \'만세\'라 고도 해석될 수 있고, \'우리를 구원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당신이 만약 예루살렘의 왕이 된다면, 우리 는 잘 먹고, 잘 살고, 정치적 독립과 그리고 우리의 이 땅에서의 꿈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사오니, 당신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 는 소청의 말로 \'호산나\' 그에게 만 세를 불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고난에 처한 백성들이 능력자 앞에 자기들의 고 난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 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이들의 외침은 구약 성경 시편 118편 25절 을 인용한 외침이었습니다. 그 말씀 을 보면,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 나 하더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가 장 높은 곳에서는 천상의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 구원하소서. 구 원하소서.\' 누구를? \'저 하계에서 지 금 간곡히 구원을 요청하는 자들의 구원을 허락하소서.\'하는 그런 내용 의 노랫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러한 무리들의 소청을 들으면서 어쩌면,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들으면서 예 수님은 침묵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 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연히 사랑이십니 다. 자비를 베풀어야 할 자가 서슴 지 않고 베풀고, 용서할 자가 있으 면 항상 용서하셨고, 그의 사랑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랑 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 도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할 때마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 간구 대로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은 풍 성하게 열매맺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 무리들이 외치 는 소청을 주님은 외면하시고 계십 니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받으시던 그 시험 중에 또 한 가지를 살펴보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예 수님을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세우 셨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 여주면서 \'가로되 엎드려 절하라. 그 리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 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만 경 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렇게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겪는 마지막 시험은 그 전, 처음의 시험과는 질적으로 중량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 당시 에는 자기만 세상 영광을 포기하면 됩니다. 나 하나, 세상 영광을 포기 하면 되는데, 지금 당하는 이 시험 은 무리를 통해서 무리의 입술을 통 해서 무리의 간곡한 애원을 통해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우리 에게 영광을 주옵소서. 당신이 십자 가를 포기한다면, 당신이 정말, 고난 을 포기하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당신이 예루살렘의 왕이 된다면, 우 리는 모두 당신을 떠받들어 진정 참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는 영화를 누리고, 그리고 우리는 복된 삶을 살며, 그야말로 이상향적 인 사회를 만들어 피차 즐길 수 있 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음속에 정한바가 있 습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나 에게 세워주신 목표 외에는 아무 것 도 이룰 수가 없다.\' 예수님은 십자 가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셨습니 다. 여러분, 어머니가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자식 전부가 배 고픈 것은 못 봐줍니다. 어쩌면 자 기 한 몸이 해를 당하는 한이 있더 라도 자식 잘 먹이고 싶은 것이 어 머니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님, 한 분, 내 뜻을 굽히면, 여기 무 리와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을 다 구원해 줄 수 있는데, 그럼에 도 불구하고 주님은 외면한 채 십자 가를 향하여 나가시고 있습니다. 우 리는 바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 입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이러 한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모습입니다. 그는 어쩜, 그 가슴속에 이들을 외면한다 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으로 찾아왔 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를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제사장의 뜰에 홍포를 입으시고, 매를 맞으시 면서도 한번도 자기가 죄가 없음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빌 라도의 법정에서 도대체 당신은 왜 여기 잡혀왔으며, 당신은 꼭 십자가 를 져야하는 그야말로 동정 어린 표 정을 빌라도의 얼굴에서 읽으면서도 주님은 자기의 억울함을 한마디도 변명치 못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최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가실 때, 한 편 강도가 말하기를 \'당신은 유 대인의 왕이 아니요? 그러니 당신도 구원을 받고, 나도 구해주시오.\'할 때, 주님은 마치 머리 깎인 삼손처 럼, 아무 기적도 행하시지 못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직 최종적인 십자가만 바라보고, 하나 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표점을 향 하여 묵묵히 걸어가고 계셨던 것입 니다. 우리는 주님의 침묵중의 메시 지를 들어야 합니다. 침묵을 통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 나님 아버지는 너희들이 바라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하시고 계신 다. 지금 너희들이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받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고통 이 있는 줄 아느냐? 너희들의 영혼 이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종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너 희들의 육체가 헐벗고, 굶주리고 부 자유한 것도 아픈 일이지만, 너희들 의 영혼은 죄때문에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 나님은 너희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를 십 자가에 못박기를 기뻐하시는 거야. 너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하 나밖에 없는 아들, 십자가에 끌려오 시는 것을 너희들은 아느냐, 모르느 냐?\'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 생 활하시면서 나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 님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 각하십니까? 인간들은 누구나 다 환 상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환상 은 인간정신 주동이며, 과거의 잠재 의식이나 미래에 대한 욕구에 의해 서 환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비의 영적인 비전은 물질과 육체 의 모든 욕구를 초월할 때, 바로 거 기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약속이 우 리의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환상을 세워놓고, 그것을 이 루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자기를 올 무를 메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 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많 은 사람이 모여서 다수가 옳다고 하 면, 그것이 좋은 줄로 압니다. 오늘 이 무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구 동성으로 하나의 결의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 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잘 살게 하 시옵소서. 우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우리에게 부하 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진리인 줄 알지만, 이것이 가장 좋은 줄로 알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 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0 절 말씀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 성을 하자, 온 성이 소동을 합니다. 온 성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은 무엇인가 하면, 이제 곧 다윗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환희에서 들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환희를 보면서 오히려 우울해 하 시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원하는 바 를 해주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삽시 간에 돌아서서 나에게 십자가를 지 라고 강요할 너희들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외칩니다. \'전례 에 의해서 이 유월절에 한 죄수를 석방하는 예가 있지 않느냐, 너희는 예수냐?\' 빌라도가 협조했을 때, 예 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군중들은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 은 그들이 다수가 결의하여 요청한 바를 거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 님은 지금, 군중 중에서 고독을 느 끼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해 들어가 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역시 최종 적인 종착역은 바로 부활입니다. 부 활로 가는 어간에는 십자가를 통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 적 승리는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 이올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서 부활했다면, 나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비로소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는 종교적 관념을 못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생각했 던 구원의 정의를 모두 포기해야 하 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가 우리 에게 주시는 구원, 하나님이 우리에 게 준비하신 영생의 도리를 믿고, 그 뜻대로 따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 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모실 수 있 는 나귀는 아무도 타지 않는 나귀였 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을 내 심령 속에 모시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자면, 나의 삶에 고삐를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처럼, 순진한 어린 아이 처럼, 전폭 적으로 나의 삶을 의탁할 때에 주님 은 나를 타시고, 저 십자가를 통하 여 부활에로 나가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