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00 인의 승리 계14:1-5
<序言>
13장에서 하나님의 인(印)을 받은 144,000명이 13장에서 사단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14장에서 시온 산에 선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으로서 구약시대에는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서는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을 모으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시84:1, 사24:23, 욜2:32, 미4:1,7). 그와 같은 사상의 연장으로 볼 때 본문의 시온 산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12:22).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 144,000명이 그 시온 산에 선 모습은 종말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대환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사단의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의 반열에 들게 한다는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계시입니다.
당시는 네로 황제의 통치(주후 64년) 때부터 시작된 로마 정부의 박해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잔인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당시에 당하고 있는 고난과 미래에 닥칠 고난에 대한 암시로 인하여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온 산에 선 144,000명의 승리적인 모습은 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위기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本論>
1. \\\'144,000\\\'인(人)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다고 했습니다 (1절). \\\\\\\'144,000\\\\\\\'을 크게 7:4의 인 맞은 자의 수로 보는 자가 있고, 7:9-17의 인 맞은 자의 수로 보는 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7:4의 인 맞은 자의 수로 보는 이 가운데는 3년 반 동안 전도의 사명을 받은 유대인의 무리로 보는 자도 있고, 마지막 대환난 추수기에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예언했던 두 증인과 충성된 종들의 무리로 보는 자도 있고,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로 보는 자도 있습니다. 7:9-17의 인 맞은 자의 수로 보는 이는 당연히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로 봅니다.
그러나 7장의 내용을 볼 때 7:4과 7:9-17에 나온 무리를 서로 다른 무리로 볼 필요는 없으며 7장의 인 맞은 수이든 14장에 시온 산에 선 수이든 동일한 수로 보아 둘 다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은 ①7:4에서 하나님의 인침은 받은 수 \\\\\\\'144,000과 14:1의 시온 산에 선 수 \\\\\\\'144,000\\\\\\\'이라는 수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②7:14에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라고 한 것과 14:3에서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라 한 것이 동일하게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자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7:3-4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친\\\\\\\' 사건과 14:1절에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 것과 형태가 같기 때문입니다. ④14:4-5에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라고 한 표현이 구원받은 자들의 신앙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인(印)을 맞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며 (5:9)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며 (7:14)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분명합니다 (14:3). 그러므로 \\\\\\\'144,000\\\\\\\'은 7장에서 인 맞은 자의 수(數)로서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144,000\\\\\\\'은 12×12×1,000입니다. \\\\\\\'12\\\\\\\'는 구원받은 만수로서, \\\\\\\'12×12\\\\\\\'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대표되는 구약교회와 신약교회 전체에서 택함 받은 자들의 완전 상징수입니다. \\\\\\\'1,000\\\\\\\'은 많은 무리에 대한 상징수입니다 (시84:10, 90:4, 벧후3:8 참조). 곧 \\\\\\\'144,000\\\\\\\'은 전 인류 역사를 통해 구속함을 받은 자의 완전한 총수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자들은 문자 자체에 얽매여 유대인 가운데 구원받은 수로 보기도 합니다. 여호와증인에서는 자신들의 협회인 미국 블루크린에 있는 \\\\\\\'워치타워\\\\\\\' 협회에 등록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단들은 자주 자신들의 범주 안에 들어온 자들이라고 우스광스런 주장들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 우뚝 설 것입니다. 그리고 \\\\\\\'144,000\\\\\\\'이 임재와 축복의 산에 올라 새노래를 부른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의 찬송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에 힘들어도 그 때를 소망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베드로후서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계20:6).
2. \\\\\\\'144,000\\\\\\\'인은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들입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았는데 거문고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2절). 그 소리는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고 성도들을 환영하는 천사들의 노래소리입니다 (5:11, 6:1, 19:1,6). 그 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뇌성처럼 우렁차고 위엄이 있는 소리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렵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거문고 타는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새 노래는 5:9에서 네 생물과 장로들이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새 노래는 배울 자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3절). 새 노래는 144,000인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새 노래\\\\\\\'라고 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변화된 자들이 새로운 내용으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새 노래\\\\\\\'는 헬라어로 ωδην καινην (a song new)입니다. \\\\\\\'새\\\\\\\'(new)에 해당하는 καινην은 시간적인 면에서의 새로움을 가리키는 νεοs와 확실히 구분되는, 질적인 면에서의 새로움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새 계명,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방언 등에서 \\\\\\\'새\\\\\\\'(new)의 의미와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새 노래\\\\\\\'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적으로 아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계획과 의지와 사역과 목적을 깨닫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구원받은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5:9-14에 보면 천상에서 부르는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15:3-4에 보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했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5:9해석 참조). 곧 \\\\\\\'새 노래\\\\\\\'라 함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과 계획과 사역과 승리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셨는데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맹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대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7:14) 곧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만이 새 노래를 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을 통해 인식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신 일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 있는 자들 뿐 아니라 지상에 있는 성도들도 새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시149:1, 33:3, 40:3, 96:1, 사40:9).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출15:1-18).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왕 바로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했고 홍해바다가 가로막혀 더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마른 육지처럼 건너게 하고 애굽 추병들은 그 바닷물에 덮여 죽게 했습니다. 그 때 홍해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일제히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경험을 통해 알고 감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 대해 가지신 계획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성취되는 것에 놀라고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승리의 찬송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새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합니다. 에베소서5:19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노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능력과 지혜가 깨달아지고 경험되어질 때마다 그 분의 하시는 모든 섭리에 대해 영광 돌려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고난에 극복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행하신 일에 감격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또한 미래에 어떤 환난이 닥쳐도 과거에 승리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승리케 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쁨으로 승리 찬양을 해야 합니다 (시편119:164, 146:2, 150:6).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아는 자들의 새로워진 영적 속성인 것입니다.
3. \\\\\\\'144,000\\\\\\\'인은 신앙의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144,000\\\\\\\'인은 신앙의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5절에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났기 때문에 법적으로 흠이 없는 자이지만, 속성상 죄를 떠나는 자들입니다. 삶 속에서 사단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①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입니다 (4절). 이는 부적절한 성 관계를 하지 않은 자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 우상숭배와 배교를 하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Johnson, Ladd, Morris, Clarke, Plummer). 이는 20:4에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고 모르드개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히11:24-26, 단1:8, 3:17-18, 에3;2).
성경에서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을 순결한 처녀로 비유하기도 하고 교회와 성도를 정결한 처녀로 비유합니다 (왕하19:21, 사37:22, 렘18:13, 암5:2, 고후11:2). 구원받은 성도는 속성상 근본적으로 사단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에 속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영향력 아래서 살아갈 때가 자주 있습니다. 17:1-5에는 인본주의 세상을 음녀에 비유했습니다. 야고보서4:4에는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사단과 죄와 세상과 육체에 속한 것들에서 나와 거룩성을 지켜야 합니다 (고후6:14-17, 사52:11, 계18:4).
②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4절). 이는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순교적 정신을 가지고 주의 삶을 산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빌2:5-11, 벧전2:22-25, 사53:4-6). 그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막8:34).
예수님 때에 5,000명 이상 되는 많은 사람이 떡을 먹고 배부를 때는 예수님을 따라갔으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 떠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갈 때는 요한과 베드로와 야고보 세 제자만 따라갔고, 심판받는 가야바 뜰에는 요한과 베드로 두 제자만 따라갔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바로 아래에는 요한 한 제자만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에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도 고난이 오면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든지 심판받는 자리이든지 죽음의 자리이든지 주께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행20:20-24, 1:4, 렘27:12).
신라 야사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목수 일을 하는 도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궁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절세 미인인 것을 안 임금은 도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신하들과 모의하고 도미를 불러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두 눈을 뽑은 후 섬으로 귀향을 보냈습니다. 임금이 도미를 아내를 취하려 할 때 그 아내는 며칠간 여유를 달라고 한 후 강가에 나가 통곡을 하다가 무심코 빈 배를 타고 강으로 떠내려 갔습니다. 며칠 밤 낮을 울며 지내는 중 배가 닿는 소리가 나서 보니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육지로 올라가 갈대밭을 헤매는데 어디서 피리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가니 산 밑 한 동굴에서 자기 남편이 두 눈이 뽑힌 채 버들 피리를 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이게 웬일인가 하여 도미를 와락 덤벼들어 붙잡았습니다. 도미는 자기 아내인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당신이 두 눈을 뽑힌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으니 내가 어찌 당신을 버리고 가겠습니까?\\\\\\\'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동굴에서 함께 지내며 풀뿌리를 캐어 남편을 끝까지 봉양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③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4절).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헌신된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출23:19, 느10:35, 잠3:9). 모든 수확 물을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대표로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첫 수확 물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야고보서1:18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말고 성별되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바침이 된 나실인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생활을 한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민6:1-8).
④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5절). 이는 스바냐3:13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라고 한 말씀의 반영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사단에게 속한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요8:44, 계22:15).
거짓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거짓된 삶입니다. 자신을 죄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내는 것도 거짓된 삶입니다 (요일1:8). 우리는 모든 삶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매력은 진실한데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結言> 우리는 현재에 어려움 때문에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미래에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을 바라보고 일어서야 합니다. 현재의 슬픔 속에서도 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자처럼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2-14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 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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