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마16:24
예수님은 우리에게 승리와 평강, 그리고 기쁨의 삶을 허락하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셨고 그 분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온전한 기쁨과 승리의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해가 바뀔 때 마다 항상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또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연말이 되면 또 다시 그 삶이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허우적거립니다. 그리고 또 새해나, 어떤 새로운 동기가 주어지면 자! 이제 나는 새로운 삶을 사는거야! 하고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립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실 이러한 삶을 매년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열매 없는 나무라고 찍혀버리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16:24)
예수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 안에 있으면 헌신은 주님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헌신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신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주님이 자신 안에 거하는 경험이고 주님이 거하시게 되면 자기부정과 헌신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사실은 은혜의 삶이요, 나는 죽고 그리스만 사는 삶이요, 나는 없고 주님만 계시는 삶입니다. 은혜의 삶이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승리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기에 충분한 원동력을 제공하십니다. 예수님은 평소의 우리처럼 “오늘은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어떤 일을 좀 할까?”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요 5: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내가 하는 것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시는 것은 삶의 차원과 결과가 다릅니다. 육의 삶이란 우리가 스스로, 자기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삶을 관리하시고 참견하시기를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고 당신만을 의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상 12: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생활도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우리는 이것을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육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차이가 있습니다. 육적인 삶은 간단히 말해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애쓰는 삶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감동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우리의 삶이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영의 삶이 아닌 육의 삶을 살기 때문에 실패와 많은 좌절감을 맛봅니다. 육은 마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천국에 가겠다고 장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나라에 갑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성공하고, 또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권력과 지식과 부요함에 대하여 자랑하고 싶은 것이 많고, 또 누구든지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신과 겨뤄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빌3:5-8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육적인 자랑거리를 스스로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결론을 내었습니다.(8절)
아직도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좌절하고 실패하며 한숨짓고 절망합니다. 포도나무를 벗어 난 가지는 자연히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이 사실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결정적인 답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 온 탕자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났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멀어지면 우리의 처지는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면 그 삶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렇게 돌아 온 삶은 우리가 행복하고, 기쁘고, 또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여기 둘째 아들은 나가고 들어 온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그런데 정작 집에 있던 큰 아들, 아버지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집에 계속 남아 있던 큰 아들이 문제입니다. 그는 돌아 온 동생에게 따뜻한 눈길을 돌리지 않았고, 또 동생이라고도 하지 않았으며, 동생을 위한 잔치에 대하여도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항의하는 이 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매우 지극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얘,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다 네 것인데 너는 살찐 송아지 몇 마리로 잔치를 베풀었다고 화가 났구나! 네가 송아지를 원하느냐? 저기 들판을 보아라. 수천마리의 소가 있지 않느냐? 저것들이 다 네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똑같은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큰 아들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삶의 보화는 생각하지 않고 조금 잃은 것만 생각하고 엉뚱하게 자신의 삶을 불평하고 원망만하고 살아갑니다.
이 부분을 다시 정리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집을 나간 탕자와 같이 다시 돌아오면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고, 승리와 성공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은 떠나지 않았지만, 집에 남아 있었지만 실상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는 탕자 같은 아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주일성수를 합니다. 의무생활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곤고합니다. 뭔가 아직 불만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분명히 누리고 있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송아지를 원하느냐? 저기 들판을 보아라. 수천마리의 소가 있지 않느냐? 저것들이 다 네 것이 아니냐?” 우리가 아버지 안에 있으면 아버지의 것이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큰 아들은 사실상아버지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재물에만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인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중요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은 오직 아버지여야 합니다. 주님이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유일한 소망이고 또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이제 저는 스스로 애쓰고 노력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더 잘 해보려고 애쓰는 것에 진력이 납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해 보려는 몸부림을 끊어 버리고, 이제는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두 손을 들고 나아갑니다. 저의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하소서. 주여 나를 써 주소서! 주여 행하소서! 주여 나를 이끄소서! 나는 마른 막대기, 타다만 부지깽이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헌신을 하겠다고, 그리고 그 어떤 새로운 결심도 말하지 맙시다. 이미 많이 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작심삼일이 아니었습니까? 이제 우리가 승리의 삶, 성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만 인정해야합니다. 내 스스로 해 보려는 육의 삶을 벗어버리고, 그러한 자신을 부인하고 이제 예수님만 인정하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찬양할 때에 우리는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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